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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5. 2019

신념

논산 성삼문 묘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뜬다.' -나옹 화상 

하늘에 달은 하나이지만 천 개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는 의미다. 직립보행만으로 다른 동물과 차별된 삶을 살게 된 사람에게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있다면 통찰의 지혜와 자유자재한 능력으로 무엇이든 살피고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대표적으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 성삼문이라는 학자도 있었다. 

자는 근부이며 호는 매죽헌이며 세종 17년에 생원시에 합격해 바로 식년시에 응시해서 급제했던 성삼문은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외가인 홍주(洪州) 노은골에서 출생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려서 삼문(三問)이라 이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하늘이 내려준 능력을 가졌다는 성삼문은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김종서 등 어린 단종의 보필 세력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자 단종 복위 운동을 결심하고 세조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가끔씩 생각날 때 찾아와서 둘러보는 곳이 바로 논산의 성삼문 묘역이다. 성삼문은 대역죄인으로 처형을 당했으나 그의 충절을 기리는 움직임은 사림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곳에 성삼문의 신체가 고스란히 묻혀 있지는 않다. 그의 일지(一肢)를 묻었다는 묘가 충청남도 논산이다. 

주차장이 아래쪽에 조성이 되어 있고 위쪽으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이백여 미터를 걸어올라 가면 성삼문 묘에 도달할 수 있다. 형을 당한 뒤 성삼문의 집을 살펴보니 세조가 준 녹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을 뿐 가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방바닥에 거적 자리만 깔려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절신(節臣: 절개를 지킨 신하)들은 신념을 지킨 사람이기도 하다. 때론 굽힐 이유도 있고 굽히지 않을 사유도 있다. 

작년은 성삼문이 태어난 지 600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김시습이 사육신의 시신을 모아 따로 묻었지만 그의 시신중 일부는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성삼문 선생의 시신 일부를 지게에 지고 걷던 인부가 고개를 넘게 되었다. 인부는 한여름이라 무덥고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서 선생의 시체에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때 등 뒤에서, “아무 곳에나 묻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부는 깜짝 놀라서 선생의 시신을 고개 주변에 대충 묻고 사라졌다고 한다. 

성삼문 묘소에서 신념이란 단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깨달음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은 역사다. 직접적 지도를 받을 수 없기에 역사를 대할 때 스승을 대하듯 하면 좋다. 그래야 최소한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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