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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20. 2019

천년의 다리

진천 농다리의 건축적인 가치

진천 농다리에 비하면 세발의 피라고 할 정도로 짧은 시간만에 성수대교는 무너졌지만 진천에 자리한 농다리는 무려 1,000년을 넘게 그 자리에서 버텨냈다. 빨리 만들고 올리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건물은 100년을 넘어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지어졌을 때 더 큰 가치가 만들어진다. 진천에 있는 대표적인 여행지 중 하나인 농다리는 한원진이라는 그 아름다움을 한시로 읊어냈다.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흥남서로 131-31에 가면 양곡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그곳은 남당 한원진을 모시고 있다.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의 학통을 이어 정통 주자학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켰으며, 권상하 문하의 강문 8 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으로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을 이끌었는데  그는' 농암모설(籠岩暮雪)'은 진천의 상산 팔경, 즉 통산별업팔경(通山別業八景)의 하나인 농다리 주변의 설경을 노래하였다. 


농암에 남은 눈먼 산에 번득이는데 [瓢謠殘雪暮山岩]

고암은 암담한 속에서 점을 찍은 듯[指点孤岩暗淡中]

귀먹은 양 진세의 모든 일을 듣지 않으려고 [耳聾不聞人世事]

눈앞에 비치는 좋은 경관 산옹에게 맡겼네 [眼前奇賞屬山翁]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오랜 시간 이곳에 자리한 별거 없는 돌다리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총 28칸의 교각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린 모습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세금천 맑은 물과 어우러진 멋진 절경이라고 말할만하다. 작은 낙석으로 다리를 쌓았지만 장마와 폭우에도 떠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과학적 기술로 축조 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다. 충남의 강경에 돌다리인 원목다리와 미내다리가 있고 보령에도 한내 돌다리가 있지만 그 길이는 진천의 농다리보다 훨씬 짦다. 

농다리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미호천의 한자를 풀어 보면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면서 흐르는 내라는 이름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부용산에서 발원하여 진천군 이월면·덕산면·초평면을 거쳐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미호천은 미호종개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 특산종으로 미호천을 포함한 금강 일부에서만 볼 수 있는데 부여의 백제문화단지를 가기 전에 미호종개 서식지가 보존되고 있다. 

다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적인 돌 쌓기로 만들어진 돌다리처럼 보이지만 기초부터 튼튼하게 쌓아서 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초석이 제대로 쌓여지면 자연석을 들여쌓기와 엇물려쌓기를 통해 교각을 만들었는데 별자리 28수를 응용하여 교각의 숫자를 28개로 맞추었다고 한다. 기초석과 교각을 보면 살짝 둥글게 처리를 했는데 이는 흘러내려오는 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호천이 흐르는 곳에 평사마을 상류 북쪽에 있는 큰 바위 봉서대(鳳栖臺)는 봉황이 날개를 펼치면서 날아가는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평사마을 입구에 세 골짜기의 물이 합수되는 곳에 오동탄(梧桐灘)은 늙은 오동나무 수십 그루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평사마을에 자주 찾아와 제자인 민태중(閔泰重)에게 글을 가르치고 돌아갈 때 별학암에 와서 술을 마시면서 평사절경에 도취되기도 했다는데 그 물길도 미호천이다. 

특이하게 미호천을 거니는 곳에는 이렇게 여권 도장함이 만들어져 있다. 농다리를 걸어서 올라가면 용고개가 있었는데 돈이 많은 부잣집에 시주를 하러 갔던 승려가 부자의 인색함에 용고개를 깎아서 길을 내면 좋겠다는 소리를 슬쩍 흘렸는데 그 말을 듣고 길을 냈다가 패가망신을 했다고 한다. 용의 모양을 가진 산에 용의 허리를 부러지게 한 것이었다. 

농다리 하나만으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엉성해 보이지만 물길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힘 빼기를 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당대의 유학자인 송시열부터 남당 한원진과 다리를 만들게 된 전설까지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앞서 말했던 호락논쟁은 인간과 동물 혹은 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인물성동론과 근본적으로 서로의 본성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성이론으로 나뉘는데 인물성동론의 대표 주자는 이간이고, 인물성이론의 대표 주자는 한원진이다. 한원진이 농다리의 절경을 시로 남겼지만 생각해보면 자연과 닮아 있는 농다리의 철학은 이간의 생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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