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가진 위대함을 자각하다.
풍광을 보는 순간 가슴이 충만해지는 것을 넘어서 자연이 가진 에너지와 그 아름다움에 기쁠 때가 있다. 이날 괴산에 자리한 화양동계곡의 화양구곡이 그런 느낌을 부여하였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살면서 많은 곳을 갔지만 계곡에서 이런 풍광을 만드는 곳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지인을 꼭 데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간의 유한한 수명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자연이 만들어놓은 풍광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가는 곳마다 그림이요. 보는 것마다 화양계곡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여러 곳을 지나갔지만 송시열이 머물렀다는 암서재에 이르렀을 때 그 느낌이 절정에 이르렀다. 한겨울이라서 냇물은 얼어 있고 바위와 그 위에 자리한 고택의 어울림이 멋스러웠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소소하고 별 볼일 없게 만들게 만들 정도의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우암 송시열이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 이곳까지 와서 반석 위에 집을 지어놓고 이름을 암서재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하였다고 한다. 암서재가 있는 이 곳은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담이라고 불린다.
지금이야 교통도 좋아져서 이런 곳도 쉽게 가볼 수 있지만 교통도 좋지 않은 때에 이런 절경은 대체 어떻게 찾아냈던 것일까. 최치원도 그렇지만 우암 송시열도 자신의 흔적을 적지 않은 곳에 남겼다. 옥천에 유허비가 있으며 대전 동구에 효종 때 세운 집인 송자고택, 자주 가서 익숙한 강경의 팔괘정, 한천팔경(寒泉八景)이 있는 곳에 지은 한천정사, 이곳에서 내려간 곳에 있는 우암 송시열 유적과 이곳 암서재 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암서재가 가장 멋스럽고 예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계곡물이 흘러내려오는 소리가 즐겁게 들려온다. 물이 이렇게 맑으니 암서재에서 머물면서 학문하기가 좋았을까. 자연을 보면 인생에서 가장 크다는 나를 배운다는 의미를 알게 된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들을 찾기가 어려운 요즘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풍만한 느낌의 이 시간들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가운데 온전하게 혼자서면 이 풍광을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춥지만 않다면 앉아서 조금 더 그 풍광을 즐기고 싶었지만 역시 겨울은 겨울이었다. 대전에는 은진송씨에 대한 이야기가 많기에 우암 송시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언급하는 편이다. 송촌동의 동춘당공원 역시 은진송씨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괴산은 명종과 선조대에 활동했던 소재 노수신이 1565년에 유배된 곳이기도 하다. 소재는 유배를 통해 힘든 서민들의 삶을 새롭게 인식하고 시로써 그들의 아픈 현실을 기록해 나갔다고 한다. 퇴계 이황에 버금가는 사상가였지만 역사가 모두를 잘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화양구곡 중 제1곡은 경천벽(擎天壁), 제2곡은 운영담(雲影潭), 제3곡은 읍궁암(泣弓巖), 제4곡은 금사담(金沙潭), 제5곡은 첨성대(瞻星臺), 제6곡은 능운대(凌雲臺), 제7곡은 와룡암(臥龍巖), 제8곡은 학소대(鶴巢臺), 제9곡은 파천(巴川)이다. 9개 골짜기의 이름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9개의 계곡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인과 천천히 돌아보면서 이 풍광을 눈과 가슴에 담아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