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an 30. 2019

공자

논산 궐리사

석가모니나 예수같이 태어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처럼 보이는 사람과 달리 공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유교가 종교는 아니지만 공자가 있기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그 말이 이어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온갖 잡일을 배우다가 스스로 노력하여 성인에 도달하게 된 공자는 인간미가 있다. 

논산에 자리한 공자(孔子)의 영상을 봉안한 영당(影堂)으로 기와로 된 정면 3칸, 측면 3칸, 면적 약 1,564㎡의 맞배지붕 건물로 궐리사의 권리는 노나라의 곡부(曲阜)에 공자가 살던 곳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1716년(숙종 42)에 권상하(權尙夏)·김만준(金萬俊)·이건명(李健明)·이이명·김창집(金昌集) 등 제자들이 노성산 아래 궐리촌(闕里村:현 위치의 서쪽)에 궐리사를 건립하고 이듬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공자를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는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 사는 이치나 교육, 문화, 정치 등에 관해 논의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으로 말 그대로 토론한 이야기를 엮어놓은 책이다. 

 궐리사에 1791년(정조 15)에는 송조 5현(宋朝五賢)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1805년(순조 5) 관찰사 박윤수(朴崙壽) 등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공자가 가르치고 싶은 것은 인생을 통해 전달되며 인격적으로 완성된 삶의 경지였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태어날 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남들에게 배우기를 즐겨했던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다고 한다. 공자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 사이의 '인'이라는 것을 중요시했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길을 이렇게 묘사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바탕으로 하여, 인에 의지하고, 예술의 세계에서 노닐었다."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만하며 군자는 그릇처럼 한 가지 기능에만 한정된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원래 궐리사는 강릉·제천·오산에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곳과 오산에만 남아 있다. 논산의 궐리사는 197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궐리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길 35



매거진의 이전글 콩나물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