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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2. 2019

삼국통일

김유신의 길상사 (吉祥祠) 

역사학자에 따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약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신라가 통일을 함으로써 삼국시대 당시보다 많은 영토를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초로 하나의 나라가 된 것만으로 보면 의미가 있다. 길상사는 삼국통일을 한 의미 때문인지 모르지만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기도 하다. 

김유신은 가야국의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으로 당시 소국이었던 김해 가야국 김수로왕의 13 세손이다. 구형왕(仇衡王)이 신라에 항복한 해를 보정 2년(562)은 고령의 대가야가 멸망한 해이고 양(梁) 나라의 중대통(中大通) 4년(532)에 신라에 항복한 것이 금관가야다. 김유신이 595년에 태어났을 때는 이미 가야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신라로 흡수되어 귀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김해 가야 왕족의 피는 신라에서  신주 군주를 지내며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김무력(金武力)에서 시작되었으며 김유신의 아버지이며 금관가야 시조인 수로왕의 11 세손은 김서현(金舒玄)으로 아내는 입종갈문왕의 손녀인 만명부인(萬明夫人)과 결혼하였는데 성골과 진골의 피가 달랐기에 거의 불가능한 결혼이었지만 만명부인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들의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삼국시대 당시 진천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접경을 하고 있어서 영토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의 왕은 김서현을 바로 이곳으로 보냈다. 이곳에 온 김서현은 만노군(萬弩郡 :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의 태수를 지냈으며, 양주(良州 :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 총관이 되어 백제와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고 한다. 

김서현의 피를 이어받은 김유신은 648년(진덕여왕 2) 백제의 대량주를 공격하여 12성을 함락했으며 이때의 공으로 이찬이 되어 상주행군대총관에 오르게 된다. 이윽고 654년에 후사 없이 신라의 왕이 세상을 떠나자 알천과 상의해서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으며 660년에는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군대와 함께 부여의 사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이때 백제를 멸망시키게 된다. 


 장군이 후대에 왕이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통일신라가 되기까지 가장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은 연개소문이 없는 고구려를 정벌한 후 태대각간이 되었으며 당나라에게서 한수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하는 등 위업을 완수하였다. 통일신라 시기인 835년에 흥무대왕에 추존하였으며 경주의 서악서원에 제향하였다. 


길상사 :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진읍 14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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