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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7. 2019

선산읍

독동리 반송과 시장 사람들

예로부터 이르기를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는데 그중에서도 절반은 바로 구미 선산에서 난다고 했다. 선산읍의 지형은  감천과 낙동강의 줄기 따라 넓고 기름진 옥토가 평야를 이루는 지형의 선산의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선산부가 선산군으로 변경된 것은 고종 23년(1886년)으로 당시 고종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러시아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일본군이 들어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선산의 한가한 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57호인 구미 독동리 반송이다. 나이가 400년을 훌쩍 넘었으며 소나무과에 속하는 반송으로 인가가 없는 농로 옆에서 자라는 고립목으로 마을이 터전을 잡을 때부터 자라온 나무라고 전해 내려오지만 자세한 내력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높이가 13미터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19.2미터, 남북으로 20.2미터이다. 나무가 잘생겼다고 말할만한 나무다. 그 때문인가 이곳의 민심은 소박하면서 학문을 숭상하였다고 한다. 

나무가 이리 뻗어나가니 언젠가는 선산읍의 모든 곳을 가리키게 되지 않을까.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줄기가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고 전체적으로 우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선산종합시장에 남겨져 있는 건물은 선산읍성 남문과 낙남루로 읍성 남문은 조선조 500년 동안 선산 도호부와 선산군의 관문으로 선산을 지켜온 역사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지금 구미시의 중심은 아래쪽에 있지만 원래의 선산읍성은 이곳에 처음 축조되어 수백 년 동안 선산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 


구미시 선산에는 조선 초기에서부터 이어져서 자그마치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으로 이곳도 5일 장이 서는 2일과 7일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이 곳이 5일장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상설시장이 들어선 것은 1993년으로 이 부근 부지 2,000평에 상설시장 2동이 들어서면서 개벌 점포가 문을 열었다. 

간장의 냄새가 멀리서부터 나는 것 같아서 반찬가게를 들러보았다. 옆에는 남해 시금치가 있다. 

글 잘하는 선비가 많이 났다는 문동골[文同, 文山], 하마비(下馬碑), 읍성의 동문이 있던 동문(東門)걸, 남문(南門)통, 서문(西門)통, 선산향교, 금오서원, 선산객사, 독동리 반송(천연기념물 제357호), 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 등이 남아 있으며  읍내 전역에서 쌀 재배가 활발하기에 이번 기회에 구미쌀을 얻어올 수 있었다. 고을에 도적이 없고 인심이 좋아 살기 좋은 곳이므로 선산이라 하였다.

잠시지만 사람이 떠나고 다른 사람이 생각이 나는 날이다. 특정 드라마 때문이었을까. 센티해진 느낌 덕에 푹 가라앉아 버렸다. 고요하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격랑의 파도를 만날 때마다 좋은 항해가 무엇인지 점점 더 선명해진다. 파도와 비바람을 맞다 보면 어차피 따가운 햇살 아래 놓일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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