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뿌리

3.1 혁명과 임시정부

최근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억지로 편 가르기를 하면서 극보수를 끌어모으려는 정치인으로 인해 시끌벅적하다. 그 정치인은 그냥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계획된 행동이다. 시대적으로 혹은 흐름의 변화에 의해 박탈감을 가지게 된 연령대의 후원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면서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된 해이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3.1 혁명과 임시정부라는 책으로 3.1 운동이 아닌 3.1 혁명이라고 부르자고 말하고 있다. 3.1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 나라의 백성들이 독립을 원하고 우리만의 힘으로 우뚝 서기를 원한다는 것을 전국에서 증명해주었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결과까지 이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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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탄 7적(매국 7적)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잘 그려진 사람들이다. 총리 이완용, 내부대신 박제순, 탁지부대신 고영희,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궁내부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 중추원 의장 김윤식이다.


병탄 조약문(국치 조약문)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는 양국 간의 특수하고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하여 동양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고자 하며... 중략...


한국 황제폐하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각각의 전권위원으로 임명했다... 중략..


<<조선총독부 관보>>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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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3.1 운동 혹은 3.1 혁명에 대해 앞뒤의 분위기나 어떻게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해 잘 기술이 되어 있다. 운동을 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준비하는데 이때 이곳에 민족대표로 서명한 것이 33명이었다. 이때 최남선은 스스로 학자로서 일생을 마치기로 결심하면서 서명에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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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늘은 야외로 운동을 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갑자기 취소가 된 덕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기미년 3.1 혁명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민족이 봉건적 신민 의식에서 근대적 신민 의식으로 전환되었고 가부장적 굴레에 종속되었던 여성이 현실에 참여하였다. 어떻게 보면 자본에 의해 불평등이 심화된 지금보다도 더 평등한 세상을 꿈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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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복심원은 3.1 혁명의 여파로 잡힌 민족대표 48명의 형량을 다음과 같이 내린다.


손병희, 최린, 권동진, 오세창, 이종일, 이승훈, 함태영, 한용운 - 징역 3년

최남선, 이갑성, 김창준, 오화영 - 징역 2년 6월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김완규, 나용환,... - 징역 2년

그리고 비교적 협조가 덜했다고 생각했던 12명에게만 무죄가 선고된다.


감옥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사형에 처하게 될 까 봐 공포에 질려 있을 때 한용운은 "독립운동을 하고도 살 줄 알았더냐!"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변호사를 대지 말 것, 사식을 먹지 말 것, 보석을 신청하지 말 것"을 몸소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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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승만이 대통령에 올랐으나 독선적인 정부 운영과 무대책에 실망한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의정원 의원들은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개헌작업을 시도하였다. 이에 반발한 이승만은 1921년 5월 29일 마닐라행 기선 컬럼비아호를 타고 상하이로 떠나서 분열을 가속시킨다. 이에 임시정부 의정원은 1922년 6월 10일 이승만 대통령 불신임안을 제출해 6월 17일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불신임안을 의결되고 이승만은 탄핵된다. 그러나 그는 구미위원회의 사업을 빙자하여 임시정부의 허락도 없이 독립공채를 팔아 자신과 측근들의 쌈짓돈으로 사용한다. 지금으로 본다면 권한이 없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채를 파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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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등에서 등장하지만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일왕 마차에 폭탄을 던진 이봉창을 비롯하여 윤봉길은 상하이에서 일본 수뇌를 폭살시킨다. 한국광복군의 제1대 지대장은 김원봉, 제2지대 지대장은 이범석, 제3지대 지대장은 김학규 등이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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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처절하게 싸웠던 임시정부 요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온 뒤 해방정국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활동하면서 독립을 위해 달렸던 수십 년의 시간이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이 되어 있지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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