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Feb 24. 2019

교류(交流)

거제의 학산리 이야기

보통은 통영에서 거제로 넘어갈 때 신거가대교를 통해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구거가대교로 건너가도 나름 예스러운 풍광이 있어서 좋다. 거제의 역사의 시작점이라는 둔덕면은 고려(高麗) 의종왕(毅宗王)이 상하(上下)에 호위군의 주둔지를 두었으므로 이름하였으며 넓은 들판에는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식량을 생산 공급했던 곳이라고 한다. 세종(世宗) 14年(1432) 거제읍성(巨濟邑城)인 고현성(古縣城)을 쌓고 관하에 7면을 두었으니 둔덕면(屯德面)이라하고 권농관(勸農官)이 집정하였다. 1915年 6月 1日 경상남도령 제20호에 의하여 상둔(上屯), 시목( 枾木 ), 거림(巨林), 농막(農幕), 산방(山芳),방하(芳下), 하둔(下屯), 어구(於九), 술역(述亦), 학산(鶴山)의 9리(里)가 법정(法定)되었다. 그중에 학산은 조금 독특한 흔적이 남아 있다.

통영은 육지에 붙어 있는 곳이지만 거제도는 섬이었기에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 왕조 수준은 아니었지만 거제도에도 사람이 만들어간 역사가 남겨져 있다. 특히 일본과 교류가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많이 밝혀진 것은 없다. 

바다를 통해 넘어가는 이 길목은 항상 에너지가 넘치지만 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목에서는 에너지가 많이 고갈되어서 힘들기도 하다. 들어가는 길목과 나가는 길목에는 이순신이 왜군을 맞서서 싸운 기록도 남겨 있지만 그때의 바닷길은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16年(757) 거제군(巨濟郡)이라 칭하다 고려(高麗) 성종(成宗) 2年(983) 진주목(晋州牧)에 속하고 동 14년(同14年:995) 산남도(山南道)의 기성현(岐城縣)이라 개칭(改稱)하여 거림리(巨林里)에 토성(土城)을 쌓고 현지(縣址)가 되었으며 현종(顯宗) 9年(1018) 거제현(巨濟縣)으로 개칭하였다. 학산리 지석묘는 규슈지방과 교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여행지중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볼거리가 많은 규슈는 열대식물과 석탄으로 유명하며 남쪽 지역은 아열대성 기후를 띠는 곳이다.  '9개의 지방'을 뜻하는 규슈라는 지명은 봉건시대의 토지분할에서 유래된 말이으로 후쿠오카[福岡]·가고시마[鹿兒島]·구마모토[熊本]·미야자키[宮崎]·나가사키[長崎]·오이타[大分]·사가[佐賀]·오키나와[沖縄] 등 8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학산리의 아사마을 밭에는 5~10미터의 거리를 두고 모두 4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이 고인돌은 땅 속에 돌로 된 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고인돌은 규슈 지방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교류를 했음을 짐작케 한다. 고인돌의 유형이 비슷하다는 것은 지배층의 교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제의 둔덕면에는 마을마다 그 유래를 이렇게 비를 세워서 알리고 있다. 학산리의 학산마을은 학이 둥지를 틀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라는 의미의 영등이라는 고유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1910년 학산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류의 원래 뜻은 서로 다른 물줄기가 섞이어 흐른다는 의미로 서로 다른 개인, 지역, 나라 사이에서 물건이나 문화, 사상 등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지역과 지역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에 교류는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동갈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