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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2. 2019

소양(素養)

문경 가은읍의 소양서원(瀟陽書院)

평소에 닦고 쌓아 바탕이 된 교양이라는 의미의 소양과 가은읍에 자리한 소양서원의 소양은 의미가 다르지만 한글로 보면 그 모양이 똑같다. 그리고 깊이 살펴보면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소양의 특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먹는다고 해서 바로 되지도 않는다. 소양을 쌓는 일은 밥을 먹는 것과 같이 꾸준해야 하고 어느 시점을 통과하면 소양이 쌓여 사람의 격이 만들어진다. 

소양서원이 있는 곳에 평산신씨의 구수제가 있다. 평산신씨의 시조를 찾아 올라가면 고려 왕건 대신에 죽음을 맞이한 신숭겸이 나온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적에게 포위당하여 위급하게 되었을 때, 신숭겸이 김낙(金樂)과 함께 왕을 대신하여 힘껏 싸우다 전사하였다. 

평산신씨의 구수제는 문중 후손들이 힘을 합쳐 건물을 짓고 중수했으며, 주변에 정려문과 신도비가 존재한다. 앞에는 냇물(농암천-영강-낙동강으로 이어짐)이 흐르고 마을 뒤는 작은 야산이어서 한눈에 이곳은 양반이 잘 살던 곳이라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수제에서 바라보면 소양서원이 보인다. 보통 서원은 입구에서부터 서원을 알리는 건물이나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은 그냥 열려 있는 공간이다. 

숙종 38년(1712년) 처음 설립되었으며 서원의 일반적인 형태인 강학과 제향 공간이 각기 별도의 곽을 이루며 앞뒤로 배치하고 있다. 고종 8년(1871) 서원 훼철 당시 사당만 철거되고 강당과 동재는 존치되었으며 강당은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 소양서원은 나암 정언신, 민백당 김낙춘, 고산 남영, 가은 심대부 및 가은 이심 등 모두 5인을 배향하고 있다. 

소양서원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관청이나 교육기관 등에서 매년이나 분기별로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소양교육이다. 소양이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갖추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노력이 없이 그렇게 소양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백 년이 지난 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딱 보아도 오래되어 보인다. 서원은 대표적으로 벼슬을 하려는 사람이나 후손을 가르치려는 사람의 기본적인 소양을 쌓는 곳이기도 하다. 

집을 들어갈 때나 나올 때 모두 문을 통하여 나온다. 자신의 집에 드나드는 데 있어서 창문 등으로 몰래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이 '도'를 통하여 소양을 쌓는 것을 게을리하겠는가. 신체 감각이 지성을 압도하면 야인이 되며 지성이 신체 감각을 압도하면 관료적으로 된다. 두 가지를 균형적으로 갖추어야 비로소 완성이 되어가는 것이다. 

소양서원에는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 강당, 동재가 있으며, 서원의 동쪽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한류정(暵流亭)과 정면 3칸, 측면2칸 규모의 존승재(尊承齋)가 별도의 일곽을 이루며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2006년 6월 15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05호로 지정되었다.

16세기 가은 인근 지역에서 출생하여 중앙에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사회에서 활동한 5인은 정신적으로 지탱하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인간관계의 법칙이라는 것은 '인'에 있다. 인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일으켜주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면 남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소양 있는 사람은 인을 실현하며 인간관계의 법칙을 잘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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