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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2. 2019

언론 (言論)

옥천의 청암 송건호 생가터

말로서 글로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바로 언론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 또는 기타의 기호를 이용해서 표현하거나 공표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언론인데 진실을 알리고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지금은 건물이 사라진 곳에 청암 송건호 생가터가 보존되어 있다. 한겨레신문사의 초대 사장으로서 창간을 주도했던 ‘20세기 최고의 언론인’ 청암 송건호(1927~2001)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나 옥천에 오래 살았던 사람은 청암 송건호의 생가터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이곳으로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다. 내비게이션이나 맵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옥천으로 지나가는 길에 이정표를 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 마을의 이 샘물은 몸에 상당히 좋은 성분을 지녔다고 하는데 보기 좋게 한다고 정비를 하다가 지금은 식수로서 활용하는데 가끔씩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마을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샘물은 옥천군의 자랑이기에 옛 그 성분을 복원하기 위해 재정비해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물을 보니 언론이란 물길을 제대로 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암 송건호 선생의 생가터는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곳에 송건호 선생의 흉상이 제막이 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송건호 선생은 197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서 '10·24 자유 언론 실천 선언'을 주도했다가 해직됐고,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옥천 고향에서는 2년 전 기념사업회가 발족해 생가 주변에 안내판과 표지석을 세웠으며, 옥천군은 지난 6월 그의 자녀들로부터 생가터(1천21㎡)를 기부채납 받아 낡은 건물을 헐어내는 등 정비에 착수하였다. 

글을 쓰는 이 혹은 글을 써서 대중에게 알리는 이는 참언론인으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조선에서 민중 개인의 의사를 임금에게 표시하는 언론매체도 존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신문고 제도(申聞鼓制度) 그러나 모든 하소연을 들어주었던 것은 아니고, 서울의 경우 사전에 주장관(主掌官),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신고하여 사헌부에 고소를 해서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만 허락되었다. 

청암 송건호 선생의 상이라고 세워져 있고 옆에는 수목이 심어져 있다. 저 수목이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자라는 그날은 언론이 바로 서는 그날이 되지 않을까.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때에는 여러 차례의 총선거와 3선 개헌안·국민투표·10월 유신 등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정국을 배경으로 보도규제 등 정부의 언론에 대한 통제 및 간섭은 심한 경향을 보였다.

이곳 마을회관에서는 일주일에 마을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고 한다. 이날 마침 모임이 있던 날이었는데 청암 송건호의 흔적을 찾아온 것을 보고 식사했냐고 물어 안 했다고 하니 손을 이끌어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내어주셔서 한 끼를 해결해 본다. 언론이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향력도 지대하기 때문에 언론 윤리가 존재하며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일상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따라야 할 도덕적인 기준을 의미한다. 

청암 송건호 생가터는 마을회관이 있는 주소로 입력하면 찾기가 쉬우니 그 주소를 남긴다. 옥천에서는 시인인 정지용이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한국의 자유언론 수호를 위해 애쓴 청암 송건호 선생을 기리는 청암 송건호 언론문화제를 연다. 언론이 바로 서야 하며 언론이 바로 섰을 때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언론인이 될 수 있다. 비난의 회초리를 국민에게 받으며 전전긍긍하는 언론인이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인가. 


청암 송건호 생가터 : 비야대정로 2길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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