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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1. 2019

열린 역사

안성 공원과 극적루

안성의 역사를 가볍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다른 곳과 달리 안성은 박물관에 옛 역사유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전시되어 있는 안성 공원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열린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안성 시민들이야 매일 보는 것이어서 별다를 것도 없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안성의 중심에 자리한 공원에 역사 흔적을 보는 것이 조금 독특해 보였다. 

산책을 하는 것은 사색을 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걷기와 사색, 삶에 대한 설창을 할 수 있는 산책은 니체와 루소가 예찬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곳을 가서 뷰파인더로 바라보면 그 균형이 조화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안식이 온다. 이곳의 대표적인 향토유적은 석불좌상과 석조광배, 삼층석탑이다. 

비틀거리는 맛이 장날 밤이 그만이라는 소설의 문구도 벽화로 그려져 있다. 안성 장날을 모르고서야 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는 안성장은 중앙시장에 가면 볼 수 있다. 


공원 내의 석불좌상은 향토유적 제8호로, 석조광배는 1986년 5월 22일 안성시의 향토유적 제9호로, 삼층석탑은 1986년 5월 22일 안성시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성 곳곳에 흩어져 있던 50여 개의 송덕비와 선정비를 모아놓은 석비군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안성 공원의 한편에는 삼층석탑도 있다. 탑의 중적 부재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이 양호하다. 1층 탑신석 남쪽 면에는 문비의 흔적이 있으며, 나머지 삼면에는 두광과 신광을 갖춘 좌상이 1구식 새겨져 있는데 이 탑은 갑석과 삼층의 탑신부만 남아 있으며, 안성 시내 주변에서 각 부재를 수습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석불좌상은 안성 시내 주변에 있는 석불(石佛) 부재(部材)를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놓은 것으로 부분적으로 파손된 흔적이 보이나 보존은 양호한 편이다. 대좌 앞에는 석등 대석과 같은 연화대석이 놓였으며, 방형의 지대 위에 거의 방형으로 가늘고 긴 복판 연화대석이 있고 조각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비는 오명한 선생 토적 송공비라고 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항 선생은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안성의 군관민이 세운 송공비라고 한다. 비문은 당시 종사관인 우의정 조현명이 짓고 암행어사로도 활동했던 박문수가 글을 썼다고 한다. 

공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고려시대에 건립이 된 극적루가 있다. 삼일 운동할 때 평화시위가 아닌 무력시위를 한 안성 사람들이어서 일까. 고려시대에 홍건적의 난 때 거짓으로 항복 한 뒤 연회를 베풀다가 적군이 취한 틈을 타 적장 6인의 목을 베고 남아 있는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공민왕은 그 공을 인정해 안성을 1362년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키고 다음 해에 신인도가 새로이 안성군수로 부임하여 국가중흥의 공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누각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위치는 현재 안성초등학교 근처였으나 1,700년 전후로 없어진 것을 다시 이곳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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