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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7. 2019

장을 만들다.

음성군 원남면의 벽화와 이야기

사람이 모이는 장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음성군에서 대표적인 장이 서는 곳으로 음성읍과 무극이 있지만 불과 40여 년 전까지 장이 서던 곳이 있었다. 바로 원남면이다. 보천장이라는 장이 서던 곳이었지만 찾는 이가 없어서 1982년에 없어졌다. 교통도 불편하고 사람들의 왕래도 없던 그곳에 장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음성 사람 송병표라는 사람이다.   조선 후기인 1885년(고종 22)에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에서 태어난 송병표는 재력가로서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보천 주막을 중심으로 시장이 있으면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생각하고 장을 만들려고 했다. 

음성을 여러 번 왔지만 벽화마을이 조성이 되어 있는 것은 소문 속의 보천장의 흔적을 찾으려고 왔다고 보게 되었다. 포니라는 차라던가 1981년에 1,000불 국민소득의 길,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문구 등은 오래전이지만 지금 보면 그렇게 도움이 안 되는 국가 정책이기도 했다. 

중국의 베이징을 가본 것이 벌써 18년 가까이 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고 길거리에서 소변을 보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중국의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지만 인륜이 바로 세워지지 않았을 때는 공중도덕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보천장을 만들기 위해 송병 표는 행상인들을 붙잡고 술대접을 하면서 보천에서 물건 거래를 해서 장이 서도록 해달라고 했으나 그 결과는 실패하고 말았다. 보천 지방에서 농산물 매매를 위해서 마을 사람들이 시장을 찾아가는 데는 청 안장이 40리, 괴산장이 50리, 가장 가까운 음성 장만해도 25리를 가야만 했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송병 표는 생각 끝에 한 가지 혜안을 생각해냈다. 1914년(甲寅) 송병표는 엽전 오십 냥을 둥구미에 챙겨가지고 하인과 더불어 보천 주막으로 들어가서 돈을 뿌렸다고 한다.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각 고을에서 송병표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나갔다고 한다. 


“보천장에 가면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

“보천장에 가면 돈을 마음대로 주울 수가 있다.” 이래서 소문이 무서운 법이다. 

음성군 원남면의 행정구역은 보천리·보룡리·마송리·상당리·하당리·상로리·하로리·구안리·주봉리·문암리·조촌리·삼룡리·덕정리 등 13 개리가 있다. 

지금 한참 봄나물이 올라올 때다. 어머니도 봄나물이 올라올 때 마실 나가듯이 나가서 무언가를 캐오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그 봄나물로 만든 요리는 특별한 솜씨에 의해 맛이 없었다. 

풍수에서도 적선이라는 방법으로 음덕을 쌓을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돈을 적선하는 행위는 예로부터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그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새터 송부자 댁에서 활인적덕(活人積德)을 하느라 돈을 물 쓰듯 한다.” 는 말이 지금은 들리지 않지만 원남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나 벽화를 보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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