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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8. 2019

광고지 뒷면

천안 아우내 독립 사적지

독립선언서를 주체적으로 작성을 해서 영광을 차지하고도 뒷날 변절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를 했으며 이광수 등과 사귀면서 서구 문학 작품을 탐독했던 최남선이다. 조선으로 와서 잡지 '소년'등을 발행하면서 근대문학의 개척자가 되었지만 초심을 잃어버렸다. 최남선은 책임은 지지 않지만 독립선언서를 쓰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해 한용운이 직접 쓰겠다고 했으나 이미 내린 결정을 바뀌지 않았다. 한용운은 독립선언서 뒷부분에 '공약 3장'을 추가했다.

갑작스럽게 날씨가 급변해서 눈이 내리는 날 천안의 병천면에 자리한 아우내 삼일운동 독립 사적지에 찾아갔다. 이곳에는 옛사람들의 비가 세워져 있다. 최초의 독립선언서는 당시 광고지의 뒷면에 쓰였다. 

독립선언서로 촉발을 한 삼일운동의 3대 원칙은 첫째, 독립운동은 대중화할 것, 둘째, 독립운동은 일원화할 것, 셋째, 독립운동의 방법은 비폭력으로 할 것'이었다. 독립운동도 자금이 없으면 실현이 어렵다. 천도교는 민족적인 거사를 앞두고 많은 돈을 지원하였다. 여운형이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할 때 3만 원을 주었고, 3.1 독립운동의 준비과정에서 기독교 측에 5천 원을 건네기도 했다. 

이곳 사적지는 1년 만에 찾아오는 곳이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불렀던 지역에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가 1947년 병천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구미산(龜尾山)에 기미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워 그의 행적을 새겼다. 유관순 열사 유적으로 봉화지(烽火址,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와 생가지(生家址,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는 이미 1972년에 사적 제230호로 지정된 바 있다.

위로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비는 4각의 기단석 위에 단계를 만들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혀 가다가 오석(烏石)으로 받침을 만들었다. 그 위에 사다리꼴의 비를 세웠는데 정인보(鄭寅普)가 글을 짓고 김충현(金忠顯)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이곳에는 천안에서 거주하는 노년분들의 여가공간으로 활용이 되는데 그라운드 골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다. 골프채와 비슷한 나무채로 게이트볼처럼 공을 굴려 쳐서 직경 36cm 홀에 넣는다. 구멍을 뚫지 않고 공을 집어넣을 수 있는 홀 깃대를 세우기 때문에 잔디밭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그라운드골프 홀 포스트는 인코스 4개, 아웃코스 4개 등 8홀이 기본이다.

들불 같은 독립운동 이후에 일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내란죄를 적용하려고 했으나 일제는 조선 민족대표들에게 중죄를 선고할 경우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민심에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라는 내부의 민심동향 분석과, 앞서 지적한 유화정책의 전환으로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했다. 그러나 유관순 같은 열사는 감옥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하면서 고문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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