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다스림

계룡시 사계고택

근본이 흐트러져 있는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일은 없다고 한다. 공부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할 때 먼저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였다.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앎을 극한까지 확충시켰다. 그와 같은 앎의 확충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한다. 충남의 사계 김장생과 회덕의 송시열은 대표저인 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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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필 때 사계 김장생의 고택을 와본 것은 3년 만이다. 사계 김장생은 1548년 7월 8일 한성에서 태어나 1631년 8월 3일 논산에서 그 생을 마감했다. 조선의 유학자인 김장생은 구봉 송익필에게 예학을 율곡 이이에게 성리학을 배워 예학파 유학의 거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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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역의 지방관을 지내다가 조정의 주요 요직을 거쳤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던 그는 김집,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윤증 등 많은 학자들을 길러냈다.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 되었다가 다시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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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은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우계 성혼에게 예학과 성리학을 배우고 그의 혼과 정신은 후학들에게 전해졌다. 그에게 배운 아들 김집, 송시열, 송준길 네 사람이 18현(東方十八賢)으로 뽑혀 성균관의 문묘에 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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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를 곳을 알고 난 뒤에야 일정한 방향이 있고, 일정한 방향이 있고 난 뒤에야 차분해질 수 있으며, 차분해진 뒤에야 평안해질 수 있고, 평안해진 뒤에야 사려할 수 있으며, 사려한 뒤에야 성취할 수 있다." -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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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과 같은 유학자를 보면 철학이 있는 삶이 먼저 연상이 된다. 인자한 사람은 재물을 잘 써서 자신을 드러내고 인자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혹사시켜 재물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이는 돈을 정승같이 쓰라는 말과 닿아 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에 중요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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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이 충남에 다시 내려와 학문에 몰두하게 된 것은 바로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이자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 등이 역모를 꾀했다고 하여 사사되거나 옥에 갇힌 계축옥사 때 동생이 연루되어 심문을 받은 후였다. 김장생이 활동하던 시기는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등 분당하고 대립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때 예의 실천 방법으로 개인의 수신을 강조하고 계구 신독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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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태도와 자기 자신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자신에게 베풀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아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순리대로 생활하면서 그 결과를 기다리지만 소인은 위태롭게 행동하면서 요행을 바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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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대청마루에 앉아서 봄꽃을 감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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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여지없이 꽃을 피운다. 사계고택은 봄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제부터 피기 시작해서 4월 초까지 화려하게 주변을 장식한다. 성실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폭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분명하게 변별하고, 돈독하게 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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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고택에 초기부터 온전히 보존된 것은 바로 사랑채인 이 은농재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간에 개보수를 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초가였다가 후에 기와를 얹은 사랑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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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유학을 이끌던 세 성씨는 노성에 자리 잡은 파평 윤 씨와 연산에 자리 잡은 광산 김 씨, 회덕에 자리 잡은 은진 송 씨다. 이들이 조선 후기 조선 예학을 꽃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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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의 고택은 이곳 계룡에 있지만 그가 말년에 낙향(1626년·인조 4년)해 강경에 서원을 세웠다. 죽림서원(황산 서원)과 임이정(황산정)이 바로 그것인데 송시열은 사계 선생과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어 죽림서원을 중심으로 임이정 반대편에 팔괘정을 짓기도 했다. 메를로 퐁티에 따르면 인간 행동의 본질 구조는 '지금 존재한다'를 넘어 '존재할 수 있다'를 지향하는 데 있다고 했다. 즉 생각했으면 행동해야 한다.


성실함은 하늘의 도이며 성실해지려고 함은 사람의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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