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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3. 2019

왔다, 사랑했다, 갔다

서천 이하복 고택 전시관

왔다, 사랑했다, 갔다는 서천 출신의 진정한 스승이었다는 이하복 선생의 유언이었다. 일본강점기에 결코 관직에 나아가 일제의 녹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 이야기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잘못된 사회라면 공공의 녹을 먹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불법을 자행하는 일부 공무원들을 보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하복 선생은 사랑이라는 것 알았던 사람이라는 데에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사랑이 지나온 길들 과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사랑의 시간 속에서 그날들을 기억해본다. 

서천을 참 오래간만에 온 듯하다. 이하복 전시관이 건립된 것을 본 것이 이날이 처음이니 말이다.  충남 서천군 첫 공립박물관인 '이하복 고택 전시관'이 2018년 11월 8일 개관했다. 태극기(20세기 초반), 놋수로(20세기 중반) 등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유물 총 1천476점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하복 선생은 책을 무척이나 사랑했으며 음악도 좋아했다. 필자와 공통점이 많이 있다고 느껴지기에 조금 더 몰입도가 높았다. 이곳에는 이하복 선생 기념실, 기획전시실, 서적 전시실, 영상실, 가상현실(VR) 체험 공간 외에 학생과 관광객을 위한 분판 체험과 가마 야외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1911년에 태어난 그는 서천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목은 이색의 후손이다. 청암 이하복 선생은 오고 가는 것이 누구나 겪은 삶의 형식 속에서 가족, 나라, 책, 전통을 사랑하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 한반도는 격랑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1910년 국권 침탈, 1911년 105인 사건, 1919년에는 삼일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가정을 이루었다면 한 남자의 인생에 한 여자의 인생이 소중하게 다가오고 한 여자의 인생에 한 남자의 인생이 그려진다. 이하복 고택의 안방 살림은 바로 황희근 여사였다. 

살아생전에 사용하던 물품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세간은 문방용품이나 규방용품, 농사용 도구나 연장류 등으로 분류되어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 그는 그렇게 좋은 가재도구를 갖추고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물질보다 정신적 가치를 더 높게 여겼던 지사형 인물다운 가재도구들이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농기구와 연장류들이었다. 이하복 선생은 일반 농가보다 훨씬 많은 수의 농기구와 연장류를 보유하고 있는데 간단한 연장은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일장기만 보고 자라왔던 내가 태극기를 처음 본 것은 서당 친구인 노승명이 만세를 부르며 들고 다니던, 그 엉성하게 그려진 태극기였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기라는 것 지금은 잃어버린 조국의 상징이라는 것, 새 장터의 만세와 주재소 습격이 나라를 찾기 위한 거대한 운동의 표출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 이하복 선생 자서전

"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책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하복 선생은 나라를 살리는 길을 교육에서 찾았으며 교육으로 이끄는 길은 책과 전통문화에서 찾았다고 한다. 나라사랑을 실천한 힘은 모두 책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평소 가옥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책이 집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집이 무너진다는 개념보다는 사람을 우뚝 서게 만드는 것에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 재산을 팔아서 교육 사업을 펼쳤지만 교장이라던가 이사장 등의 직책은 모두 맡지 않았으며 평생을 평교사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특히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비슷했다. 인격을 닦고 전통을 잇는 중요한 수단으로 음악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에게 가야금을 배웠으며 여가 생활 용품 대부분이 악기나 음반 같은 음악 관련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과 음악은 리드미컬한 삶을 이어준다는 데에 비슷한 느낌이 있다. 음악을 듣고 감상하는 일은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한국의 전통악기 중에 가야금을 가장 좋아한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줄을 뜯거나 튕겨서 소리를 내고, 왼손은 줄 위에 얹어 줄을 누르거나 흔들어서 전성·요성·퇴성의 표현을 한다. 가야금의 구음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책을 좋아하고 그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이하복 선생은 음악과 부인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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