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Mar 25. 2019

고운 옷

서천 한산모시 전시관

한산 모시로 만들어진 우리의 한복은 보기만 해도 곱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옥의 역사도 참으로 오래되었을 텐데 패션에서는 많이 외면받아왔다. 바람만 불어도 끊어질 만큼 모시는 가늘지만 천으로 만들어지고 다시 옷으로 만들어지면 오래도록 갈 수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인 쿠튀르를 표준 사이즈에 다라 만드는 기성복과는 달리 그 옷을 입을 여성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 제작된다. 

우리 역사에서 한산모시로 만들어진 옷은 서양의 쿠튀르만큼이나 사람의 몸에 잘 맞추어 제작된 옷이었다. 실크나 면을 그물처럼 짠 얇은 망사 천인 튤로 만든 워스의 이브닝드레스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모시옷에 있다. 

흑색 옷을 보면 단아하면서도 강한 느낌이 있다. 모시옷을 흑색 계열로 물들이면 조선시대에 흑단령을 관복으로 한 것처럼 옷을 만들 수 있으며 민가에서는 흑색 계열로 염색한 치마와 함께 소색 저고리를 착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 드라마에서 한 땀 한 땀 손을 들여 만든 명품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모시 역시 그렇다. 12승의 명품 모시는 한 폭에 승수(올 수) 880올 이상을 모시를 말한다. 그 아래로 특품, 상품, 중품 등의 모시가 있다. 

한산모시는 모시를 제작하는 지역민의 삶의 결정체라고 한다. 모시 생산의 역사와 지역적인  정서는 저산팔읍길쌈놀이라는 전통놀이문화로 계승되기도 했다. 

모시를 자기 위해서는 날실(경사)과 시실(위사)이 필요하다. 날기는 날실을 준비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으로 베날기라고도 한다. 직물의 길이와 폭, 섬세도(샛수)등에 따라 날실의 길이와 올 수가 정해진다. 날기 작업은 충분한 공간과 두 명 이상의 작업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광고가 넘쳐나는 지금은 스타나 인지도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샐러브리티에 집착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라고 해서 우리는 샐러브리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유명한 인물이 아름다운 옷을 입으면 그것을 따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모시는 왕가, 사대부의 관복뿐만 아니라 일반 평민의 복식 등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모시는 갑옷까지 만들 수 있었으며 교역대상, 신분, 사용되는 용도에 따라 승수를 달리하여 규제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기능성 섬유를 사용한 것은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다. 기능성 섬유는 주로 스포츠나 군대, 의료산업 등의 특정 기능을 목적으로 개발한 합성섬유였지만 지금은 전분야의 패션에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천연으로 만든 기능성 섬유 모시가  있지 않은가. 

하얀색의 여성 모시옷을 보니 화이트 웨딩드레스가 연상되었다. 화이트 웨딩드레스가 나온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이트는 정숙한 신부들을 위한 단 하나의 색으로 여겨지면서 선호하기 시작했다. 화이트는 신부의 순수함과 순결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고 실용적이지 않고 사치스럽기만 한 웨딩드레스는 평생 딱 한 번(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만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화이트이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에코 산업은 큰 사업이 되었다. 면화, 실크, 리넨과 같은 유기농 천연 섬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모시와 같은 삼과 같은 환경친화적 농작물로 만들어진 의류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에코 패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보통 흔히 생각하는 히피적이고 오트밀 색으로 가득 찬 오가닉 패션이 아니라 세련미를 가진 패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시한복은 충분히 세련미와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발트 빛 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