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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6. 2019

서천 이하복 가옥 

초가삼간이라는 말은 참 많이 들어보았다. 한국의 가옥들은 칸수로 집의 크기를 계산한다. 초가삼간이라는 것은 정면에서 세 칸이 있고 가로에 한 칸이 있으니 세 칸인 가옥을 의미한다. 부엌이 한칸들어가니 단칸방에서 가족이 함께 보내는 것이다. 주택설계에서 가장 최적화해서 만들어진 것이 초가삼간이다. 주택이라는 것은 최고의 하나를 얻기 위해 그 외의 모든 것을 잘라내는 결단이 필요한 공간이다. 

서천에 거주하는 분의 말로는 원래 이곳이 명당이었지만 주변 지형이 변하면서 지금은 명당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다. 이하복 고택 혹은 가옥, 초가는 멀리 진산(鎭山)에서 좌우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이룬 명형국지(名形局地)에 자리 잡고서 국(局)이 열리는 수구(水口)를 향하여 남서향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은 19세기 후반에 3칸 안채를 건립한 후 20세기 초에 사랑채·아랫채·광채를 지으면서 안채의 좌우측을 증축한 것이라고 한다. 초가집은 관리에 손이  참 많이 간다. 우선 볏짚을 1년에 한 번씩은 갈아주어야 빈대 같은 해충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들은 바로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다. 사소한 이득을 보려고 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리는 소탐대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자성어로는 矯角殺牛(교각살우)라고 하는데 손해를 크게 볼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마땅치 아니한 것을 없애려고 그저 덤비기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갑자기 어떤 대상 혹은 분야가 좋아졌다고 해서 그것에 푹 빠지는 사람도 해당이 된다. 다른 것을 보지 못하면 균형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이하복 가옥의 안쪽에 들어오면 일반 고택에서 보던 그런 풍광이 펼쳐진다. 우리 한옥에서는 황토로 단열재를 만들어서 넣었다. 단열재 = 기체라고 보면 가장 적당하다. 고체는 분자 간 거리가 짧고 기체는 멀다. 단열이란 열을 차단한다는 의미보다 열의 이동을 늦춘다는 의미이다.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이 공간은 공기가 멈추어 있는 것만 같다. 열은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의 '상태'를 가리킨다. 분자가 격렬하게 운동하거나 진동하면 고온, 얌전하게 있으면 저온이다. 

이하복 고택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앞쪽에 대문간이 있는 一자형의 사랑채와 뒤쪽에 ○형을 이룬 안채와 광채가 튼 ㅁ자형을 취하고 있다. 사랑채의 우측에는 一자형의 아래채가 2칸 정도 떨어져 자리 잡고 있다. 상부 가구는 전면의 지붕을 후면보다 길게 하기 위한 2고주4량가(二高柱四樑架 : 半五樑架)이며, 지붕은 우진각 초가지붕이다. 

집을 만들 때 혹은 살고 싶은 집을 볼 때 설계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게 된다. 설계나 디자인은 창조적인 행위이기 이전에 버리는 결심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저것을 다 넣고 싶지만 미련이 생긴다. 미련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침의 견지다. 힘들게 결정한 방침을 뒤집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이하복 고택의 출입구는 하나다. 열려 있는 주택의 평면 내부에 확실한 중심이 자리를 잡고 그 주변을 다른 요소가 둘러싸게 되는데 이것을 코어 플랜이라고 부른다. 이 집은 사랑채의 우측에 아래채를 별설하여 며느리에게 독립적인 공간을 할애했다. 

무목적이라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집은 공간의 공유와 전유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요즘같이 1인 가구가 확대되어 갈 때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가족이 공유하는 공간과 개인이 전유하는 공간이 존재한다. 혼자 살더라도 많은 수의 내가 존재한다. 직업으로서 나, 지역으로서 나, 친구로서의 나, 혈연으로서의 나... 이 집의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은 그런 나의 존재를 자각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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