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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31. 2019

하늘이 만든 경치

낙동강 제1경 경천대(擎天臺)

곶감으로 유명한 도시이며 쌀맛이 좋다는 고장 상주는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큰 도시였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합쳐서 경상도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당시의 큰 고을이었던 경주와 상주의 앞글자를 따서 경상도라고 지은 것이었다. 대전에서 가면 경천대가 있는 상주시의 동쪽 부근은 태백시 황지연못에서 발원해 점점 수량이 커진 낙동강이 젖줄의 면모를 만나게 된다. 경천대의 원래 이름은 '자천대(自天臺)'이며 뜻은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로 풀이할 수 있다.

국민관광지라고 불리는 상주의 경천대로 가는 길목에는 산수유가 피어 있었다. 보통 산수유 열매는 어떻게 생겼는지 많이 알지만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적다. 산수유는 경상북도 의성군을 상징하는 군화(郡花)이기도 하다. 산수유꽃은 양성화이며 3~4월에 노란색의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20~30개의 꽃이 산형 꽃차례에 달린다. 

경천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우담 채득 기선 생이 살던 곳이다. 우담 채득기 선생은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삼전도 굴욕을 당하고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의 세 왕자를 볼모로 청나라 선양으로 끌고 갈 때 이들을 보좌하기 위해 갔던 사람이다. 소현세자와 강빈이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봉림대군이 1650년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되기 전 벼슬하기를 권했으나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1647년 4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예로부터 선비들이 자주 찾던 곳을 가보면 경치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주가 큰 고을이었던 만큼 이곳에는 우담 채득기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서 모임 장소로 활용하였다. 지금 벼슬을 하려는 사람들의 후보자들을 보면 청렴이나 정직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 거리낄 것이 없는 채득기 선생은 이국적인 나라 청나라에 가서 고생을 했으니 충분히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수도 있으나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이곳에 내려와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다. 

저 계단을 올라가면 상주의 경천대를 만날 수 있다. 바위를 돌아서 걸어 올라가면 낙동강 제1 경이라는 경천대 혹은 자천대가 나오게 된다. 충청지역과 대전사람들은 금강이 젖줄이지만 경상도에 사는 사람들은 낙동강이 젖줄이다. 하늘을 떠 받든다는 뜻의 '경천대비' 비석 앞에서 무우정을 포함해 근방을 한번 둘러본다.

하늘과 맞닿아 있기에 이곳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중 먹는 물 때문에 걱정하는 비율은 높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존에 있어서 물은 상당히 중요하다. 최근 베네수엘라의 상황만 보더라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된다. 농사가 기본이며 먹는 물이 필수였던 오래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한 사람의 글이 지역명을 바꾸어버렸다. 하늘이 스스로 내렸다고 해 자천대(自天臺)는 채득기가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란 글을 새긴 뒤 경천대로 바꿔 불렀다. 저 앞에 있는 정자는 이 지역 출신의 선비인 우담 채득기 선생이 지은 정자인 무우정(舞雩亭)으로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다.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소현세자(昭顯世子)·봉림대군(鳳林大君)·인평대군(麟坪大君) 등의 시와 그것에 차운한 작품을 함께 묶은 군신언지록은 채득기가 지은 시문집이다. 그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미루어 짐작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바른 생각과 소신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상주의 경천대는 삼한시대에는 상주시 지역에 사벌국(沙伐國, 또는 沙伐梁國, 沙弗國)이라는 소국이 있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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