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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2. 2019

지붕 없는 미술관

영천 가래실 문화마을

원주민이라고 하면 보통은 개발되지 못한 그런 국가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말 그대로 원주민은 원래 거기 살던 주민을 말한다. 그렇지만 역사에서 원주민(原住民) 또는 선주민(先住民)은 역사적으로 침략자가 원래 침략한 지역에 살던 종족을 부르는 말로, 침략자 입장에서는 개척지 또는 이주지 이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을 말한다. 필자는 후자가 아닌 전자에 그 의미를 두고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바람이 그림이 될 때 가래실 문화마을에도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다양한 시각과 예술 워크숍을 통해 특별한 것을 찾을 수 있듯이 가래실 문화마을도 원주민이 살던 그 공간을 보존하고 벽화로 만들어서 보일 듯 말 듯 벽화를 품고 있는 마을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투어코스는 무인카페, 공예 체험장, 마을 역사박물관, 마을 갤러리로 이어진다. 그 중간중간에 있는 벽화도 보고 오래된 건물인 쾌우정, 풍영정등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조형물도 마을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2011년 작품과 2016년에서 2018년 사이에 조성된 작품으로 구분이 된다. 가래실 풍경, 나만의 별, 여행가의 하늘, 달빛 소녀, 행운의 문, 고흐를 그리다. 보물창고, 소통의 꽃, 세상의 새, 별자리 부조벽화 등 40점이 넘는 작품이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보통 대대로 살아오는 농촌마을은 집성촌을 이루게 된다. 가래실 문화마을이 있는 지역은 영천 화산면 가상리로 안동 권 씨, 영천 이 씨, 평산 신 씨 3개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통 역사를 기록하는 국립박물관은 보통 왕조 단위로 기록물이 기록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보아온 역사들은 실생활과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주로 큰 물줄기를 그리고 있기에 사람들의 생활로 가까이 다가가기는 쉽지가 않다. 국가의 역사 역시 개개인의 삶이 모여서 이루어져 온 것이다. 마을 공동체의 역사를 남기고 싶어서 만든 곳이 바로 이곳 우리 동네 박물관이라고 한다.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가고 점심이 되면 점심밥을 먹고 오후에 일하다가 저녁에 들어오면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잔다. 우리 동네 박물관에는 규모 있게 만들어진 국립, 도립, 시립 박물관과 달리 소박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주민, 삶, 생활로 만나볼 수 있으며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사진첩의 모습들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소박한 삶이 이어지는 곳에서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도 있었다. 러시아의 화가로 추상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품은 이 마을과 의외로 잘 어울려 보였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점, 선, 면은 자신의 길을 찾는 방황을 하는 여행에서 찾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칸딘스키는 꾸준히 음악, 철학, 미술 이론을 심도 깊게 탐구하면서 점차 추상화로 나아갔다. 그는 색과 선, 형태를 통해 사상을 표현하고 감동을 일으키기를 원했으며, 그것은 순수한 음악적 언어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시각적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


유형무형의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예술가는 대상을 맹목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해하고 인강의 감정을 순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유교사상의 본질로 들어가 보아도 성리학의 근본적인 물음과도 맞닿아 있다. 생각지도 못한 여행지에서 대상이 지닌 정신적인 힘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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