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선샤인의 만휴정
안동의 깊숙한 곳에 있지만 끊임없이 사람이 오가는 곳으로 만휴정만 한 곳도 많지 않다. 주차를 하고 나서 300여 미터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만휴정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유진 초이와 고애신의 만남 장소로 자주 활용되던 곳이다. 드라마에서만 만나보다가 직접 그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안도 시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으로 발길을 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어지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기억이 생겨나는데 대부분은 망각에 의해 지워진다. 망각은 인간의 기억이 효율적으로 작용하는데 필요한 기능이다. 망각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일도 잘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효율적으로 만들어간다. 무의미한 것은 지워버리면서 기억 속에서 필요하거나 소중한 저장공간을 차지하지 않도록 삭제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어서 사람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말년에 귀거래 하여 지은 정자 만휴정은 연산군 때 대사간에 올랐으나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한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얻은 것이다. 관직이라는 것은 그렇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세상에 없다.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고 바른 것이 아니라면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김계행의 만휴정(晩休亭)의 한자를 해석하면 늦은 나이에 쉰다는 의미다.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 아니다. 생각이 열려 있지 않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옳은 것이라도 보이지 않는다. 만휴정에서 귀거래의 늦은 삶을 여유롭게 보낸 김계행은 천수라 할 수 있는 87세까지 살았다. 노스탤지어는 마음의 병인데 바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귀향, 귀거래를 뜻하는 노스토스(nostos), 괴로움과 고통을 의미하는 알고스(algos)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드라마에서 유명한 장면이며 남자와 여자의 만남과 이어짐이 있던 다리다. 물질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바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유효기간이 짧다. 그렇지만 훌륭한 삶이나 즐거운 삶은 오래도록 만족과 성취를 만들어준다. 격이 있는 삶을 추구하며 일, 놀이에 완전히 몰두하는 훌륭한 삶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은 의미 있게 자신에게 돌아온다.
만휴정을 보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가야 하고 아마도 반드시 저 다리로 건너오게 될 것이다. 물론 신발을 벗고 밑의 계곡물을 헤치면서 건너오는 방법이 있지만 그냥 다리로 건너오기로 마음을 먹는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 만휴정을 김계행이 지은 것이라고 나오지만 그것은 팩트가 아니다. 장인이 지었고 김계행에게 준 것이다. 이제 건너가야 할 돌다리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가 고애신(김태리)에게 “합시다, 러브”라고 말하던 그 유명한 돌다리다.
사람들은 만휴정을 보러 왔지만 필자는 만휴정을 보고 의외로 아름다운 산하에 더 큰 울림이 느껴졌다. 암벽의 단애 위로 흰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송암 폭포와 위쪽으로는 암반 위를 흘러내려 이룬 소와 계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잘 어울린다.
절로 즐거워지는 삶은 휴일인 일요일 아침에 듣고 싶은 이성의 목소리가 생각날 때가 아닐까. 동영상은 보기 쉽고 접하기 쉽지만 사람의 상상력을 발전시켜주지 않는다.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들을 보면 원작을 넘어선 작품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아무리 훌륭한 감독과 배우를 써서 표현했더라도 비슷해질 뿐 소설을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모두들 만휴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안동에는 안동김씨, 안동권씨, 안동정씨가 모셔진 삼태사가 있다. 김, 권, 정씨는 후삼국시대에 견훤과 왕건 사이에서 왕건을 선택하고 결국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그 공을 치하해 삼태사에 모셔진다. 원래 안동이라는 지역의 지명은 고창이었지만 동쪽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고 해서 편안할 안과 동쪽의 동을 붙여 왕건이 안동이라는 지명을 내려주었다. 김계행은 삼태사의 후손이다.
굳이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멋진 곳이다. 머물고 싶은 곳이기도 하고 사색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 열린 창은 자신이 보고 싶은 만큼만 열린다.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세상이 그래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좁아져서다.
진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상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로 보고 직접 와서 보니 "합시다 러브"를 할만한 장소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보는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마음의 길을 낸다. 걸어봅시다. 길.
“대대로 청백한 삶을 살고 항상 돈독한 우애와 지극한 효심을 갖도록 하라. 그리고 절대 세상의 헛된 명예를 얻으려 하지 마라” - 김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