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

궁궐과 한국의 인물들

지금은 옛 모습을 모두 갖추지 못했지만 경복궁은 조선왕조 들어서 가장 먼저 지어진 궁으로 왕실의 각종 의례와 사신 접대에 맞게 건물 규모나 형태를 정비하여 조선 정궁의 면모를 갖춘 곳이다. 영화의 대사처럼 조선의 왕족이 가장 불행한 민초의 행복을 추구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애민군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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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통해서 들어오면 대궐 문 앞에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나라의 최고급 관청인 육조가 좌우에 도열한 육조대로가 열려 있다. 경복궁의 궁궐 내부는 남북 직선 축 선상에 정문과 정전, 편전, 침전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배열되어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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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군주가 남쪽을 면해서 조정을 바라보도록 한다는 유교적 통치 질서를 반영하여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정치적으로 대체적인 일은 신하들의 몫이고 국왕은 단지 최종적인 결정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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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품이 낮은 신하부터 영의정까지 순서대로 자리하는 곳이다. 정 1 품부터 9품까지 우측에 도열하고 종 1 품부터 9품까지 좌측에 도열한다. 이곳에서 하는 국가적인 유교 의례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는 길례, 둘째는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는 가례, 셋째는 손님을 맞는 빈례, 넷째는 출정하는 군사들을 격려하는 군례, 다섯째는 장례를 당하여 치르는 흉례이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는 가례를 올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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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은 말 그대로 위엄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국왕이 정사를 보며 신하들의 의견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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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을 지나쳐서 왼편으로 들어오면 위대한 대한민국 문화유산전이 열리는데 이는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으로 위대한 대한민국 문화유산전이 열리고 있었다. 6월 1일까지 경희루 인근 특별 전시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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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근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특히 컬러로 복원된 인물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이 있었다. 여성으로는 유관순이 그 이름을 올리고 있어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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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복원된 독립운동가는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미래를 선명하게 기록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태극기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민족의 혼을 대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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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태극기, 자수 태극기, 데니 태극기, 서명문 태극기, 임시의정원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는 모두 하나의 태극기다. 우선 수형생활을 할 때 찍은 사진의 유관순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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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가 나오기 전에 보편적인 사진의 형태였던 흑백사진은 때로는 고급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컬러가 일반적으로 느껴지지만 흑백만의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흑백사진 고유의 부드럽고 풍부한 계조톤에 의한 자연스러운 화질을 통해 유관순의 혼이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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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되기 시작하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이 곳에서는 김구,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등 독립운동의 주역 4명이 컬러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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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의례를 치르는 일 외에 궁궐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궁궐은 크게 외전과 내전으로 나뉘었으며 외전은 정전과 편전, 내전은 거주하는 사람들의 건물이기에 수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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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궁궐의 정점에는 왕과 왕비가 있었다. 침전, 서재, 별당, 전각, 후원은 모두 궁궐을 위해 필요한 건물들로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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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술이 집약된 궁궐은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과 최고의 자재, 최고의 격식을 갖추어 지어졌으며 궁궐 건축은 조선왕조의 모든 역량이 결집되어 만들어진 구조물인 동시에 예술품이었다. 그런 궁궐이 있는 곳에 근대 역사 독립운동의 주역이 자리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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