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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3. 2019

두드려라

창원 주남 돌다리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속담은 누구나 다 아는 속담이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한다는 의미다. 신중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덜 신중하다. 사람이 조그마한 것에 흔들리는 것은 자기중심이 서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혼자서 우뚝 서 있을 수 없다면 두드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다. 전국에 적지 않은 돌다리가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돌다리는 많지 않다. 지역별로 돌다리가 있었던 곳에는 돌다리라는 지명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수십수백 곳이 된다. 

주남돌다리는 주남저수지에서 아래쪽으로 수백 미터를 내려가면 만날 수 있다. 정확한 주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가술리 590을 검색하면 된다. 돌다리 아래로 흐르는 천은 주천강으로 주천강은 남쪽의 주남저수지와 북쪽의 동판저수지 두 곳에서 관개용수를 공급받아 대산 평야를 동서 방향으로 흐르면서 이 평야를 적시고 낙동강 유등 수문까지 흐르는 하천으로 주천강(注川江)의 ‘주(注)’는 ‘물을 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 크기의 돌다리는 충청남도 강경에 가면 볼 수 있는데 두 곳에 다리가 놓여 있지만 실제 다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다리가 보존되고 있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이곳은 지금도 돌다리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돌다리는 조선 조정에서 다리를 놓으라고 하던가 지역에 부임한 관리가 놓은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만든 다리라고 한다. 

 4m 간격으로 교각(橋脚)을 만든 다음 그 위로 여러 장의 평평한 돌이 올린 형태로 석재는 화강암과 점판암이라고 한다. 주남돌다리는 창원시 대산면 가술리 고등포 마을과 동읍 월잠리 판신마을을 이어주는데 예부터 주천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교통로로 많이 이용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다리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주남교가 세워지면서 다리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보인다. ‘사이 다리’가 줄어 ‘새[間] 다리’가 된 것이라고 하기에 지역민들은 이 다리를 주천강 사이에 있는 다리라 하여  주남 새다리[新橋]라고 지금도 부른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속담도 있지만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라는 속담도 있다. 똑같이 두드리는 것이지만 의미가 다르다. 앞의 속담은 신중함을 의미하며 뒤의 속담은 무언가를 하려면 적극적으로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들은 두드려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불편하기에 직접 산에서 돌을 가져다가 다리를 만들었다. 그런 행동들이 두드리면서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일은 탓하는 것보다 불편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직접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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