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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03. 2019

말을 대체하다.

상주 자전거박물관

충남 서천 마량항에 가보면 성경전래지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이 땅에 최초로 성경(a Bible)이 온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2016년에 완공이 되어 개관하였다. 그로부터 200년 전인 1816년 9월 5일 영국의 알세스트호의 함장 머리 맥스웰(Murray Maxwell)은 유럽에서 건너와 조선인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1816년 9월 1일~10일까지 열흘 동안 우리 서해안을 탐사했던 알세스트호(Alceste)의 군의관 존 맥클라우드(John M’leod)가 1년 후인 1817년 출판한 항해기가 바로 “Voyage of His Majesty’s Ship Alceste, along the Coast of Corea, to the Island of Lewchew”(John M’leod, London, John Murray,1817)이다.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전거이지만 자전거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교통수단이었다. 영국 사람이 1816년에 이 땅에 오기 전 1815년 인도네시아의 숨바와섬 탐보라 화산은 대규모 폭발을 일으킨다. 폭발력은 가히 어마어마했는데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을 1로 보고 핵폭탄의 위력을 측정하는데 이때 폭발력은 역사상 최악의 화산 폭발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히로시마의 수만 배로 보기도 한다. 

안전장구를 쓰고 끼고 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전거가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 수단이면서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있다. 상주 자전거 박물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전거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1815년에 터진 탐보라 화산은 당시 주민 10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만들었으며 그 화산재는 미국과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일조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밀농사와 귀리 농사까지 2~3년간 흉년에 들게 된다. 귀리는 말의 주된 먹이로 중요한 교통수단인 말이 급속하게  감소하면서 부족해진다. 그로부터 2년 뒤 독일 사람 카를 폰 드라이스는 인류의 최대 발명품이라는 바퀴 두 개를 연결할 생각을 하게 된다. 

독일인이 발명한 자전거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순사가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고 들어온다. 필자도 어렸을 때 18단 이상의 자전거는 가격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에 자전거가 얼마나 비쌌겠는가. 자전거는 오랜 시간 부자의 상징으로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는 재산 1호가 되기 전까지 재산 1호로 그 이름을 올린다. 

다시 드라이스 남작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마차는 바퀴가 네 개였지만 두 개를 나무로 연결하고 그 위에 올라타서 걷거나 뛰면서 땅을 차 앞으로 나가도록 고안하였다. 지금 아이들이 즐겨 타는 놀이도구와 비슷한 방식으로 탄 것이다. 

교통수단의 대체를 위해 만들어진 드라이스의 자전거는 1860년대에 프랑스인 피에르 미쇼가 페달을 달면서 땅에 닿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발전한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1885년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를 동일한 크기로 하고 동력을 체인으로 연결하고 존 던롭이 아들이 통고무바퀴를 장착한 자전거를 타면서 많이 다치는 것에 안타까워 개발한 공기 타이어가 장착되면서 비약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1895년 파리~보르도 구간 랠리에서 선보이며 자동차에도 모두 공기 타이어가 장착된다. 

상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 8도 전국 자전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땅에 공기타이어를 장착한 현재와 유사한 자전거가 선보인 것은 1903년에 정부 관리들을 위해 자전거를 100대 도입하면서부터였다. 1910년 상주는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자전거를 보급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도 칼 폰 드라이스가 발명했다는 드라이지네를 만나볼 수 있다. 마치 달리는 목마와 같이 생겨서 "Hoby Horese"라고도 불렸다. 안타까운 아이디어맨의 작품도 이곳에 있다. 페달 자전거는 프랑스인에 의해 확대되었지만 이미 1839년에 커크패트릭 맥밀런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부상을 입어 특허를 단념하는 바람에 사장된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관련 사고도 많이 늘고 있다. 예전처럼 고급자전거 열풍은 사그라들었지만 자전거를 레포츠를 즐기는데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거의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역동적으로 변화한 국가도 있고 정체되어 있는 국가도 있었다. 한 국가에서 일어난 재난이 먼 나라의 교통수단을 변화시켰으며 발전시키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어떤 이는 대양을 건너가 낯선 책 성경을 전달하기도 했다. 상주는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자전거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자전거나 내연기관 자전거도 있지만 사람이 가진 에너지를 이용해 움직이는 자전거는 스스로 건강해지기도 하는 좋은 운동기구로서 활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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