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니는 일

한밭수목원 서원을 걸어보다.

정자 뒤에는 수석 둘이 서 있고, 연지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곳은 잘 다듬은 석재들이 꾸며져 있다. 정자 서쪽 못가의 돌에는 태액이라는 글이 전서로 쓰여 있는 곳은 바로 1692년 숙종이 명하여 어수당 동쪽 방지 한가운데 섬을 쌓도록 하고 북쪽 못가에 세운 한 칸 정자 애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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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정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한밭수목원이 마치 임금이 머물렀던 정원처럼 동원, 서원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이야 그냥 산을 거닐고 자연을 돌아다니면 되었지만 현대인들은 이렇게 도심에 정원을 조성해두지 않으면 거니는 것이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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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시작해도 서원은 걸어볼 수 있지만 정식 출입구는 엑스포 시민광장에서 들어오는 입구와 만년동에서 들어오는 입구, 대전 예술의 전당, 이응노미술관에서 들어오는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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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동원으로만 들어와서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이번에는 서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만년동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들러서 잠시 볼일을 보고 숲 속의 작은 문고에 어떤 책이 있나 살펴보았다. 조금 더 나아가면 왼편으로 불규칙하게 생긴 연못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열려 있는 느낌의 감각 정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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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생식물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주변이 울창한 숲이고 골짜기 사이를 샘물이 흘러 마음이 저절로 맑아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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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거니는 일에 딱 맞는 시기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으며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서원에는 버드나무숲을 비롯하여 상수리나무숲, 명상의 숲, 단풍/신갈나무숲, 물오리나무숲, 침엽수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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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는 일은 정해진 격식은 없다. 그냥 한 권의 책과 함께 하면 더없이 좋다. 올해 봄날의 단상을 생각해도 좋고 수목원에서 만나는 어린 왕자도 좋다. 릴케에 의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자격이 필요해서, 먼저 나 스스로의 성숙한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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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교실에서는 가끔씩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고 한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말 그대로 배움을 청하는 곳이다. 문학과 자연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 준다는 의미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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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닐면서 평온을 얻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도시 프랑스의 파리는 릴케에서 다른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릴케에게 파리는 사치와 에로티시즘에 물든 황금시대(belle époque)의 수도가 아니라 인간성이 상실된 비참한 도시였고, 정체불명의 소외되고 병든 빈사의 도시였으며, 공포와 빈곤, 죽음의 도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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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물은 빠져서는 안 될 요소다. 릴케가 노년을 론강에서 머물면서 마지막의 재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론강은 높은 산을 흐르면서 좋은 경치와 험한 물길을 이루는데 유럽 대륙에서 유일하게 지중해로 직접 흘러들어 가는 큰 강이다. 아름다운 강으로 유명하다. 이곳 습지는 지금 재정비 중이어서 올해 말이 되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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