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미술 기획전 '스르륵 美 <--->來'
사람은 태어날 때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지만 커가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능성을 잃어가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아이 때보다 더 나아지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사회에 어떻게든 적응해하면서 얻은 경제적인 능력뿐이 없을 듯하다. 도전, 탐구, 열정, 호기심, 사랑, 순수한 배려 등등 원래 아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런 좋은 점은 점점 희석되어가고 없어져간다.
"All grown-ups were children first But few of them remember it"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필자는 어린 왕자의 한 문구가 어른이 아이였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큰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로 해석이 된다. 어른이 되어서 아이보다 나아진 것은 정규학습과정에 의해 숙달한 한정된 지식과 업무에 필요한 전문지식정도뿐이다. 게다가 그것도 제대로 배운 사람은 많지 않다.
올해의 어린이날의 시기에 맞춰서 대전시립미술관 5 전시실에서는 어린이 미술 기획전을 열었다. 6명의 작가(마이클 스코긴스, 안효찬, 이덕영, 임성희, 채미진, 홍빛나)가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전 연령층에 던지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전을 열어서 찾아가 보았다.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이 비교적 또렷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성장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완성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유일하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돈 정도랄까.
아이들은 커가야 하고 성장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형태가 결정되어 있지는 않다.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성장의 열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전의 제목을 '스르륵'이라고 한 것은 어떠한 것이 밀려들어오는 소리 혹은 그 모양을 뜻하는 부사이며 자연스럽게 잠재적 감성을 흔들고 새로운 기억을 창출하는 높이 활동의 공간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누군가의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부모가로 불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족 구성의 어떠한 변화가 있더라도 온전히 '나'이어야 한다. 어떠한 이에게 소개를 하더라도 온전한 '나'가 되고 나서 누군가의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성찰의 수단으로 '나'가 되고 나서 나아가 '가족'이라는 좀 더 큰 자아가 만들어진다. 홍빛나라는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소재에서 생명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자세히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에 참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술은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하고 그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곧 끊임없이 변화하며 반응하는 개인으로서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수반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시 관람 중 마주친 작품이나 전시 이미지를 통해 매체와 개념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할 수 있다.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고 가족이 어딘가로 가고 있다. 올해로 벌써 어린이날이 시작된 지 97년이 되었다. 3년만 더 있으면 어린이날은 무려 100주년이 된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로 그만큼 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시작된 것이다. 5월 5일은 특별하게 아이와 함께하는 날이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다.
어릴 때는 이런 그림을 참 많이 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웹툰이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부모의 관점에서는 만화를 그리는 것은 아주 쓸모없는 일이었다. 필자도 어릴 때 만화를 그리다가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난다. 대체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은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어른들은 그걸로 인해 돈을 벌 수 있는가와 돈을 벌 수 없는가로 구분한다. 마이클 스코긴스는 거대한 종이 위에 그림일기 혹은 낙서처럼 보이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유년의 경험과 사회, 그리고 정치적 이슈를 담았다고 한다.
전시전 공간의 중앙에 있는 안효찬의 작품은 이미 천안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가상의 작은 세상은 솔직하고 명료하며 극 사실주의 표현이 더해져 그 의미를 가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예술은 관객이 존재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고 말한다. 혼자 무언가를 쓰는 것은 그냥 일기지만 공개적으로 발행이 되면 작품으로서 출발을 한다. 작가만의 세상이 아닌 함께 생각하는 과정이자 공감하고 치유하기 시작한다.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생각할 수 없는 경계까지 확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더 괜찮아지기 위해 노력할 때 인간적이 된다. 그로 인한 슬픔과 비애가 있지만 기쁨과 환희는 더 커질 수 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 그림을 그릴 때 손 맛이 느껴지는 드로잉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드로잉 작업의 특성은 일상성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표현되는 섬세함과 끝까지 완성해야 하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도시계획을 하면서 도시의 건축물이 남긴 인상과 감성에 나름의 색깔을 부여한 기억이 난다. 그냥 난해하게 그리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무언가 형태가 드러날 때 즐거움도 있다. 모든 시각예술의 기초에는 드로잉이 있지만 드로잉만으로 가치가 부여된다는 것은 예전에 이응노의 드로잉에서 기술한 적이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의 색깔만 보일 때도 있다. 인생의 본질과 가치는 그 행위 자체에서 이미 발생한 것이며 그것의 연결이 유기적일 때 깊이가 더해진다. 자유로운 표현, 편견이 없을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누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어린 어른일 뿐이다. 아이일 때는 어린아이, 부모가 되면 어린 부모, 단지 어른이 되면 어린 어른이 된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책에서처럼 깨달아가는 사람이 되면 어린 왕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시절의 선과 색을 발견하는 것은 아이만의 특권은 아니다.
2019 대전시립미술관 어린이 미술 기획전
스르륵 美 <--->來
For Every Kid of Today
2019.5.3~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