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요석의 길

바다를 건넌 선사인들

한반도는 일본에 비해 화산활동이 활발하지 않았기에 화산활동으로 인해 천연적으로 발생하는 단단한 돌인 흑요석은 많지가 않았다. 원석이 좋다는 의미는 물질에도 해당이 되지만 사람에게도 적용을 할 수 있다. 원래의 재능이 좋은 사람은 가려져 있어서 잘 모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빛이 나 보인다. 실제로 보아도 검은색에 반질반질하면서도 빛이 나는 흑요석은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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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선사시대 인류에 의해 활발히 사용된 흑요석에 주목하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 선사시대 인류의 삶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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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전에서 소개된 유적과 유물은 홍천, 원주, 부산, 공주, 울주, 양구, 철원, 장흥, 동해, 홍천 등과 일본에서는 차엔, 히라노, 니시와 카쿠도, 이키섬 하루노쯔지, 카우스등에서 발굴된 유적을 토대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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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지는 흑요석은 실제 보면 마치 검은 유리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균일한 석질로 인해 제작자의 생각대로 떼어내는 것이 가능한 흑요석은 날카롭고 매우 예리해서 도구로 쓰기에 강력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선사시대 사람들은 질 좋은 흑요석을 구하기 위해 화산지역으로 이동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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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석장리 유적은 선사시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1970년대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도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일본을 원산지로 하는 흑요석제로 선사인의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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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사시대인들은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구석기)와 돌을 갈아서 만든 석기 간석기(신석기)로 나뉘는데 일반적인 돌은 단면이 거칠고 마음대로 돌을 손질하는 것이 손쉽지 않았지만 흑요석만큼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졌기에 무척 귀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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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양한 기술로 생활이 변화해가는 것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과거 선사인들도 진화를 해왔다. 나이프형 석기가 주로 사용되었던 4만 년 전에서 시간이 지나 2만 년 전이 되면 좀돌날과 찌르게로 1만 년 전에는 석촉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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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해도 시라타기 유적을 살펴본 결과 찌르개 제작의 실패와 성공을 볼 수 있다. 창끝에 달던가 나이프로 사용한 찌르개는 원석을 양쪽에서 조금씩 떼어나가며 나뭇잎 형태로 만드는데 실패할 때도 있지만 성공하면 떼어낸 부분만 복원되고 가운데는 비어 있게 된다고 한다. 그 부분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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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대표적 흑요석 원산지로 한반도의 백두산, 일본 홋카이도 시라타키, 규수의 고시다케가 있다고 한다. 이는 멀리 있는 곳까지 전달되기도 했는데 마치 철기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운반하기 편한 크기로 만든 것처럼 흑요석도 그렇게 가공되었다. 돌감의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 희귀한 돌감이 흑요석을 조금이라도 많이 들고 다니도록 하는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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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러 곳을 가본 적이 있지만 사가현은 가본 기억이 없다. 사가현 이마리시에는 일본에서도 질 좋은 흑요석을 생성해내는 고시다케가 있다. 고시다케산 흑요석은 일본의 20군데 이상의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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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일본을 배로 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비교적 작은 배로 움직였을 선사시대에는 어떻게 교류를 했을까. 신석기시대 흑요석으로 만든 석촉과 작살은 한국이나 일본의 대표적인 어로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 형태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교류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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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살펴보면 후기 구석기시대 최종 빙하기 약 2만 5천 년 전에는 해수면이 하강되었다고 한다. 이때 부산에서 대마도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대마도를 건너 이키섬을 경유하면 일본 규슈지방까지 이동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석장리박물관은 2018년에 본 유물대여를 위해 북해도와 이키섬의 관련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이 전시전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석장리박물관 2019 특별기획전

바다를 건넌 선사인들

2019.5.3 ~ 20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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