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이육사문학관
저항, 항거 둘 중 어느 단어를 써야 하나 고민했다. 밖에서 가해지는 힘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는 저항과 옳지 않은 것에 맞서서 반항하는 항거는 비슷한 것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저항은 조금 소극적인 느낌이라면 항거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는 것 같다. 안동의 인물 이육사 하면 저항의 시가 연상된다. 청포도라는 시로 잘 알려진 시인이면서 일제강점기에 항거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민족시인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며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는데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기도 하다. 그가 자라나는 시기는 유학을 배우는 마지막 세대로 유년시절에 한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조선혁명 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하고 기자생활과 항일투쟁을 함께 펼쳤다. 불과 40년을 살아오는 동안 20년 동안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을 하다가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끌려가 세상을 떠난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 청포도 (이육사)
시인으로 많이 알려졌기에 다른 항일투사처럼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것은 가려져 있다. 이육사의 정신세계의 뿌리는 자신의 조상인 퇴계 이황과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에서 멀지 않은 곳 농암종택의 주인이었던 이현보에게서 만들어졌다. 자신의 부모 혹은 조부모에게 교육을 받는 것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도 전통이었다.
글을 쓰면서 자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이육사 역시 고독이나 비애를 맛볼지라도 시 한 편만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될 것이라면서 스스로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저항을 뚜렷이 밝힌 것이다. 수감번호 264번 이원록은 시대적 과제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일제강점기 때만 그런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불평등, 열악한 계층의 문제는 글을 쓰는 사람은 계속 살펴야 한다.
이육사의 집안은 자식을 가르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폭넓은 독서경험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는데 이는 국제적인 안목과 확장된 의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즐겨 읽었다는 책의 대부분은 읽어본 듯한데 그중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라는 책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가 궁금했다.
고된 옥살이는 어머니의 증언으로도 알려졌다. 모질고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옷이 며칠을 가지 못하고 피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다양한 철학자에게서 이어진 것이었다. 앞서 말한 윌든은 월든 호반에서 실제로 하루하루 살았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에 권위를 더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하고 직설적이며 세련된 문체의 월든:숲 속의 생활은 단순한 생활 속에서 경험과 자유롭게 여가를 누리려는 노력을 서술한 18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육사는 조선혁명 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훈련을 받으며 항일투쟁과 관련된 폭탄 제조, 기관총 사격, 변장술, 독도법 등까지 익혔다고 한다.
이육사문학관에서 이육사를 보면 당대의 시인들은 지금과 달리 상당히 폭넓은 지식과 시야로 현실을 진단하고 분석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에서 다룬 주제 또한 사회, 정치, 경제, 영화, 예술까지 폭넓고 다채로운 관심을 두었다.
"조선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조선으로 돌아가서 노동자. 농민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여야 한다." - 이육사
1943년 가을 이육사는 동대문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북경의 일본 총영사관 감옥으로 이송이 된다. 총칼은 직접적이고 빠른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이육사가 들었던 펜은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그 힘은 더 크다. 이육사의 6형제는 모두 재주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우애도 몹시 깊었다. 이 점은 참 부럽다. 보통 형제들의 성향은 비슷하게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의 형제들은 해방 전후에 언론계와 문화예술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지만 남북 분단의 희생양이 되며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