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역사를 만들다.
지금은 양반의 고장이며 고택이 즐비하며 유학의 역사를 아로새기고 있는 경상도의 유명한 도시 안동시는 간고등어를 비롯하여 안동 소갈비, 안동 비빔밥, 안동소주 등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음식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안동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언제쯤 처음 불리기 시작했을까. 안동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고려 건국과 같이 이어져 있다. 영국 와 프랑스의 100년 전쟁이 유명하듯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100년 전쟁의 각축전은 바로 통일신라 말기에 일어난 후백제와 고려와의 전쟁이었다. 삼국지에서 영웅의 역사처럼 그려지듯이 당시 견훤, 궁예, 왕건은 지역을 대표하는 세력가이며 야심가들이었다.
안동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태사묘는 안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한 세 명의 시조를 모신 곳이다. 원래는 고창이라는 지역명을 가진 곳이었지만 고려 왕건의 입장에서 경상도 지역의 확고한 발판을 만들어주었기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였다고 하여 안동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며 안동부로 격상시켜주었다.
안동 태사묘에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김선평, 권행, 장정필 3명의 태사(太師)의 위패를 모셨으며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50년 6·25 전쟁 때 전소된 것을 그 후 복원하였다. 태사묘의 부속건물은 보물각과 숭보당, 동·서재, 경모루(敬慕樓), 안묘당, 차전각 등이 있다.
직접 가본 안동 태사묘는 서원 같은 느낌이면서도 사당 같은 느낌을 같이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견훤은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침공했다. 이에 고려 왕건도 도와주러 갔다가 거의 완패를 경험했지만 다시 일어난 병산 전투는 930년 12월 후백 제국은 교통의 요지 고창으로 몰려들었고 이에 왕건은 그곳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김선평, 권행, 장정필 등은 군대와 식량을 대주었고 고려군은 먼저 후백제군의 식량 보급대를 공격해 보급로를 끊었고 왕건은 대군을 이끌고 고창 병산으로 진격해 3-4일간의 접전 끝에 고창지역의 지방 호족들의 지지를 얻은 고려군이 후백제군을 대패시켰다.
병산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장정필, 김선평, 권행 이 세 사람을 삼태사라고 한다. 여기서 태사는 정 1품 명예직을 뜻한다. 권행은 경주 김 씨였지만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자살하게 한 데 대해 분개하던 중 태조 왕건을 도와 고창에서 견훤을 크게 물리쳤다. 병산 전투에서 김행의 공을 크게 여긴 왕건은 김행에게 수훈이 크다 하여, 능병기달권 즉, “기미에 밝고 정세를 밝게 판단해 권도에 통달했다”라고 하며 권 씨 성을 하사한다.
이곳 보물각에는 고려시대에 삼태사가 사용했다고 말해지는 붉은 칠 잔 1개, 백옥대, 금대, 여지금대, 오서대, 옥관자 2개, 동인 2개, 갖신 1쌍, 비단 2폭, 공민왕의 친필교지 1점 등이 보존되어 있다.
물론 지방호족의 세력을 이끌어낸 왕건의 승리가 맞겠지만 지역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술 때문에 패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노파는 술을 잘 빚기로 이름난 주모였는데 신라 말 견훤의 군대가 병산에 진을 치고 고창성을 죄고 있는 판국에 그녀가 고삼을 넣어서 만들 술을 견훤의 진중에 선물하였는데 병사들도 너무 맛있어서 계속 마시다가 결국 술에 취해 패했다는 이야기다.
이비는 삼공신비(三功臣碑)로 고창 호족 김선평, 권행, 장정필 등은 성민들을 이끌고 고려 왕건을 도와주어 개국에 큰 도움을 준 것을 기리고 있다.
보물각으로 들어가 본다.
삼태사가 쓰던 유품 중 남아있는 것은 주홍목배와 여지금대의 장식품 뿐이라고 한다.
고려말 1361년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와서 70여 일을 머물렀다고 한다. 안동은 고려 건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지역이었기에 선택된 것도 있지만 지리적 이점뿐만이 아니라 고려조정에 안동 인물이 많고 고려왕실과 혼인관계에 있어 안동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지도를 보면서 안동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역사의 흔적을 살피고 있었다. 이 지도에 도장을 찍으면 무엇을 주냐고 물어봐서 그럴 것 같다고 했는데 이 지도가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모르면서 아는척해서 약간은 미안했다. 태사묘에서의 향사는 신위는 동쪽을 필두로 하여 김태사, 권태사, 장태사의 순으로 되어있지만 그것으로 어느 편이 상석인가는 따지지 않는다. 축관은 세 명으로서 각각의 신위 앞에서 앉아 동시에 축을 읽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 신위의 위차문제는 없어지고 평등함을 뜻함으로써 세 성씨 특히 김씨와 권씨 사이의 논쟁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