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생의 묘

태산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는다.

군자는 멀리 있는 것을 걱정하고 소인은 가까운 것을 걱정한다고 한다. 먼 장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없으면 가까운 일 때문에 자꾸 근심이 늘고 쌓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면서 한 달을 채우고 1년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그건 그냥 살아진 것이다. 20년이 지나 뒤를 돌아보았는데 집 혹은 약간의 돈만 남았다면 그걸 빼면 무엇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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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라보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삼가라고 항상 말했던 김장생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산 7-4에 잠들어 있다. 사계 김장생의 묘역에는 양천 허 씨 7대 조모, 삼촌 김공휘, 6대 조부, 김장생의 동생 김 선생의 묘, 5대 조부의 묘 등이 함께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묘역이 잘 조성된 곳은 부럽기는 하다. 그만큼 후손들이 그 학맥을 잘 이어왔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만큼 가풍이 좋았기에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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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이라는 예학의 거두가 나오기까지는 조상인 양천 허씨의 공도 크다. 광산 김 씨 가문에 들어왔지만 17세의 나이에 남편이 죽어 홀몸이 되었다. 그녀는 아들인 김철산을 잘 키워냈는데 그의 후손 중에 김장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광산 김 씨, 달성서 씨, 연안이 씨를 조선 3대 명문으로 꼽는다. 사계 가문은 세도가보다는 대대로 학자를 많이 배출했는데 이곳에서 앞쪽 멀리 보이는 산은 금남정맥으로 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므로 발복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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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 묘역을 찾아왔다면 사계 종가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차도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보내볼 수 있는 곳이다. 종가는 계보상(系譜上)의 줄기와 가지의 관계를 나타낼 때에 쓰는 말로서 대종의 종가를 대종가(大宗家)라 하고, 소종의 종가를 소종가(小宗家)라고 하며 파종의 종가를 파종가(派宗家)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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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되어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준비를 여름부터 해온다고 한다. 그 내면을 치밀하게 만들었기에 겨울에도 독야 청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시간은 집중할 수 있어도 하루를 집중하기는 힘들다. 하루를 열심히 할 수 있지만 한 달을 계속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1년 동안 한 가지 능력을 배양하는데 집중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이 10년이 되었을 때 빛나기 시작한다. 김장생은 독서를 밤낮을 쉬지 않고 침식까지 잊기도 했는데 아플 때를 빼고는 그만둔 적이 없었다고 한다. 글을 읽음에 있어서 만약 글의 의미가 분명히 이해되지 않으면, 생각하고 또 읽고 읽었는데 꿰뚫어지게 통한 다음이라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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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배우기만 하는 것은 허망하게 되고, 배움 없이 생각만 하는 것은 위태로울 뿐이라고 한다. 사계 종가에는 만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지도하던 곳이 있는데 기와집 4채 가운데 정면의 건물이 사계가 머물렀던 염수재라고 한다. 안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사당이 있는데 사계 내외와 4대조까지의 조상 신위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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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 묘역에서 김장생의 묘가 가장 위쪽에 있다. 그리고 왼편 능선 아래에는 양천 허씨 묘가 있다, 그 위에 담장을 두른 묘가 7대 손자인 사계 김장생 묘이니 후손이 조상보다 위에 썼으니 역장이다. 오늘날 같으면 비판이 많았을 텐데 조선시대에는 역장을 문제 삼지 않았다.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면 위에 써도 상관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학문을 접한 그는 어느 한 가지 사상이나 학문만이 진리라고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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