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순교의 시작점 진산성지
진수 :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와인에 대해 조사했어요. 천주교 이야기 하시는데 왠 와인이야기에요? 아! 김조교님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교수 : 내가 진수에게 와인만 이야기했지만 원래 커피와 와인은 이슬람과 기독교를 대표하는 음료였어. 지금이야 커피를 너도나도 즐기지만 천주교에서 커피는 이슬람에서 즐긴다는 이유로 '악마의물'이라고 거부하기도 했었거든.
김조교 : 오랜만이야. 이슬람에서는 커피가 무함마드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전해준 음료라고 전해지고 있어.
진수 : 아 그런 역사가 있었군요. 그럼 한국에 천주교가 전해질 때 그런 영향도 있었겠네요.
교수 : 그건 아니야.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 처음 커피가 들어왔지만 배척당하다가 1475년 유럽에 세계 최초의 커피 하우스가 콘스탄티노플에 문을 연 뒤 퍼져나가기 시작했거든. 커피가 유럽사람들의 마음을 잡은 결정적인 사건은 천주교 사제들이 교황 클레멘스 8세에게 커피가 악마의 음료라며 커피 음용 금지를 탄원했는데 교황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유럽에 커피가 널리 퍼진거야.
김조교 : 그렇지 않아도 제가 준비하는 논문이 이슬람의 커피가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서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유럽의 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킨 커피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친구가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커피를 마시는 바람에 죽음에 이른 예술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커피를 사랑했던 베토벤은 당시 비싼 커피 원두를 60알을 세어 넣은 후 만들어 마신 일화는 유명하죠.
교수 : 천주교 탄압이 시작된 그 시대에는 악마의 음료라는 커피처럼 천주교가 가지고 있던 교리는 용서될 수 없었던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야. 시대가 바뀌게 되면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고 바꾸고 싶은 세력들이 있는데 보통은 초기에 뿌리세력의 힘이 강한편이지.
진수 : 무언가를 거부하는데 있어서 양측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었네요.
김조교 : 교수님 천주교에서 가장 중요한 음료는 와인으로 한국에서 와인이 퍼지게 된 것도 천주교 포교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진수 : 와인이 서양에서는 오래된 것이라고 알고 있긴 하지만 한국땅에서 뿌리를 내린 것도 천주교와 관련이 있을 수 있겠네요. 그냥 박해만 생각했는데 와인도 연관이 있을 수 있겠네요.
교수 : 무시할 수 없을거야. 기독교에서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멋진 선물로 생각했었으니까. 그리고 로마가 유럽을 재패하는데 있어서 와인은 물 대신으로 사용된 물자였는데 모든 것을 조달할 수 없어서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에 포도나무를 심었던 것이 프랑스 와인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한거야.
교수 : 한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천주교가 이 땅에 왔을 때 바로 탄압이 일어나지는 않았어. 그 시작이 된 금산에 위치한 진산성지는 최초 천주교 탄압지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면서 발생했어. 당시 정조와 체제공은 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했거든. 체제공은 정조의 마음을 읽고 미리 예판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아래처럼 고했어.
"장례 때 가난한 자는 형편상 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것입니다. 두 죄수의 죄는 신문해보면 밝혀질 것입니다. 만약 억울한데도 불구하고 죄를 받는다면 어찌 불쌍하지 않겠습니까."
진수 : 그런데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인가요?
김조교 : 교수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진수야 다음에 보자.
교수 : 그래 초안이 완성되면 한 번 보자. 아무튼 윤지충과 권상연은 각자 다른 지역으로 도피했다가 자수를 하는데 여러날을 심문해보니 신주 소각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야. 부모에 대한 효가 국왕에 대한 충으로 연결되던 조선에서 용서할 수 없었던 사건으로 바뀐거지. 결국 정조는 노론이었던 형조판서 김상집과 참판 이시수를 불러 물었고 그 다음날 정조는 '위정학(정학을 보위하라)'을 언급하면서 윤지충과 권상연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어.
진수 : 천주교도라고 해도 너무 했던 것 같아요. 자신의 부모의 신주를 태워버리다니 그건 종교를 넘어선 일 같은데요.
교수 : 그 당시에 천주교는 부모에 대한 제사조차 인정하지 않았었어. 지금이야 돌아가신 분들에게 기도도 올리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윤지충과 권상연은 결국 정조 15년 (1791) 11월 13일 전주 풍남분 밖 형장에서 참수를 당하고 진산군은 5년 동안 진산현으로 강등되게 된 사건이야.
진수 : 아 그래서 그곳에 전동성당이 있었군요.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곳이라고 본 기억이 나요. 건축학을 배우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을 말할 때 단골처럼 거론되는 건물이기도 하죠.
교수 :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터인 전동성당에 가면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의 고백이 새겨진 성당의 창도 있으니까 다음에 가면 찾아봐.
진수 : 전동성당은 관광객이 정말 많은데 저 곳은 한가롭네요. 너무 소박하기도 하구요.
교수 : 그전까지 천주교는 서양의 과학을 접할 수 있는 수단이었지 종교로서 자리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어. 초기에는 대부분 남인들로 대표되는 양반들이 접할 수 있었는데 이 사건을 시작으로 종교로서 백성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
진수 : 그렇군요. 전 오늘 와인과 커피이야기가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역사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요. 전 이만 가볼게요.
"전라감사의 조사에 따르면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태워버린 사실을 자백했다 하니 어찌 이처럼 흉악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있겠는가. 대저 경학으로 모범이 되는 선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차 물들어 이처럼 오도되기에 이른 것이니, 세도를 위해 근심과 한탄을 금할 수 없다."
- 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