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 갤러리 '하늘을 나는 새 영토를 버리다.'
목소리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고 그 패턴에 따라 성량과 균형이 결정된다. 때론 감정 변화나 질병 등으로 인해 목소리가 변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가진 목소리는 무리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일정하게 유지된다. 장애를 가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파동처럼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 것이 목소리의 하모니이지만 다른 의미의 Voice of Harmony로 여러 가지 재료 혹은 표현방법에 의해 작품으로 만든 전시전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작품전은 씨 킴(CI KIM)의 열 번째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전에서는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사진, 비디오, 레디메이드 오브제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1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작품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자신만의 조화로운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거친다.
재료가 다양하게 사용된 작품의 전시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주제가 무엇인지 한 번에 아는 것은 쉽지가 않다. 흔하게 보이는 폐기물이나 물감, 철가루, 폐품, 잡지, 시멘트 등이 흩뿌려지듯이 작품 속에 있다. 이 세상에 모든 물질이 충돌, 중첩, 상쇄하면서 균형 상태를 유지하듯이 그런 에너지와 우연성을 표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작품들은 어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거려 아마 기사 사진으로 사용한다면 바로 거부되었을 것들이다.
이 작품은 마치 잭슨 폴락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잭슨 폴락은 화폭을 바닥에 눕혀놓고 서서 물감을 흩뿌리고 뿌리는 '드리핑 페인팅 기법'을 선보이며 액션페인팅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의 추상회화는 물감을 뿌리는 동작과 그러한 행위가 주는 의미가 만들어 놓은 작품 속에서 인간이 균형적으로 만들어내던 그런 것은 잊고 그만의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알 수 있다.
바람 앞에 등불이라고 했던가. 바람 앞에 촛불이라고 했던가. 1룩스의 빛은 촛불 하나의 밝기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1 칸델라는 촛불 하나의 광원 세기를 기준으로 했다. 1 칸델라의 광원인 촛불로부터 1m 떨어진 위치에서의 조명도, 즉 밝기는 1룩스(lx)로 정의된다. 조명의 표준은 와트가 아니라 칸델라, 루멘, 룩스 등의 단위를 사용하는데 광원의 세기, 즉 광도의 단위인 칸델라(cd)는 촛불의 영어단어 ‘Candle’로부터 기원하였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아니라 이곳에서는 누가 내 마카롱을 옮겼을까라고 봐야 할 것이다. 치즈 이야기로 변화를 역설했던 책은 두 번째까지 나와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쥐에 비유된다. 계속 같은 곳에서 있는 치즈만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사라진 치즈로 인해 나아가야 할지 그냥 그곳에서 없다고 투덜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야기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일까. 그것보다는 탁하다. 옛날에는 여인의 머리에 얹어진 가채가 풍성할수록 미인이라고 보았다고 하는데 목은 적지 않게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목소리를 읽어내야 할까. 마네킨들은 모두 거친 시멘트를 아무렇게나 뒤집어쓰고 있다. 영토를 지키려거든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날려거든 영토를 버리라고 한다.
작품 전시전이 열리고 있는 한편에는 송지민의 사진 전시전도 열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을 거지같이 그리고 싶은 욕구
더러운 선을 쓰고 싶은 욕구
저렴한 단어를 쓰고 싶은 욕구
문법과 발음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
온몸을 비틀며 걷고 싶은 욕구
대량 생산된 맛없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
식사를 다 남기고 싶은 욕구
옷을 찐따처럼 입고 싶은 욕구
비루하고 싶은 욕구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개대충 하고픈 욕구
만만히 보이고 싶은 욕구"
모두 필자가 추구하는 것과는 안드로메다만큼 먼 이야기다.
영토 혹은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집을 확보하면 우선 안도하게 된다. 그리고 먼 곳을 바라보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 소득이 되고 자산이 늘어나게 되면 진보에서 보수로 변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가진 것을 지켜주려는 정치에 무게가 놓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기에 땅에 정착하여 안주하는 상태를 벗어나며 끝없는 날갯짓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곳이 곧 자기의 자리가 되는 생태 본능에서 더욱 왕성한 생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토가 없는 새의 삶은 안정적이지 않고 영토가 있는 자는 구속 없는 하늘을 오가는 새가 부러울 수 있다. 전형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 속에 자연 생태계의 다양한 종이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연출한 듯하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갯짓이 목소리가 되어 울리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귀로 들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전통적 회화 재료를 떠나지 않고 그리기에 몰두했던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시간의 중첩과 물감의 물질적 특성을 통한 회화를 추구했다. 작가만의 고유 아이덴티니가 있듯이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도 고유 아이덴티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그것이 자신만의 날개를 가지는 방법이다.
CI KIM
Voice of Harmony
2019.5.23 ~ 10.23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