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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대한민국의 독립을 열망한 사람들

제목을 정하고 나서 다시 돌아보니 주마등처럼 선임의 말이 생각이 났다. 막 전입한 신병에게 그날이 올 것 같냐?라고 물어보는 짓궂은 질문은 군대생활이 녹록하지 않아서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질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이야 더 짧아졌지만 2년이 조금 넘는 시간도 그렇게 길다고 느껴지는데 일제강점기 36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길었을까. 그날이 오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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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근대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이라는 주제로 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날이 오기를 바랐던 사람이 있었고 그날이 오기를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다. 친일부역자, 일본 지배하에 공직에 근무하는 사람들, 일본의 지배하에 노동을 했던 사람들은 그날이 오기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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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국가로서의 출발을 하기 위해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즉 광복 이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는 강점을 당해 대한민국 정부로서의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임시정부라고 부르지만 정부의 정통성은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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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기를 마음껏 사용하고 대한민국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던 시대에 어떤 느낌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임시정부의 동력을 만든 것은 1919년에 일어난 삼일 독립운동이었다. 우리 민족이 진실로 그날이 오기를 바랐던 것을 민족 지도자들이 메시지로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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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단발령, 고종 퇴위, 군대 해산은 단계적으로 일본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전국에서는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범윤, 차도선, 홍범도, 허위, 이인영, 민종식, 최익현, 이소응, 이강년, 민긍호, 신돌석, 전해산, 기우만, 안규홍, 임병찬, 노응규 등이 일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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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망명을 해서 상하이에 모였다.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27년간 중국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존립하게 된다. 그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본인과 가족, 조력자, 밀정도 모두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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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 기념호

1. 하루 아홉 번 원수를 치부하고 욕됨을 부끄러워하자.

2. 광복 독립에 온 마음을 모으자.

3. 독립은 그저 바라고 꿈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적어도 한 가지씩 일을 맡아 하자.

4. 전 민족이 한 마음으로 통일되기를 힘쓰자.

5. 독립운동의 통일된 조직은 오직 임시정부이니, 임시정부를 붙들고, 받들고 모시자.

-1926년 9월 3일 자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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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이 일어나고 1년 후에 유관순 열사도 감옥에서 사람들을 모아 다시 외쳤다.


"삼월초 하룻날 우리나라 다시 만날

한양성 만세소리 삼천리에 울리던 날

강산아입을여러라 독립만 세

삼월 초하로 날의 인의 피 흐르던 날

이피가 흘러들어 금과 옥이 되옵거든

삼천리 자유의 강산을 꾸미고자"

-독립신문, 19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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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간 한인의 일반적인 일자리는 영국인 전차 회사의 검표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역회사, 철공업, 인쇄업, 사진관, 의사, 기업의, 대학교수, 공무원 등 생계를 위해서 살기도 했지만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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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로 한인들이 이주하게 된 사건은 삼일운동 직후였다. 신념과 생계의 딜레마는 수많은 한인들에게 닥쳤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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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배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양반에 국한되었다. 그렇지만 삼일운동 이후에는 한국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문맹 퇴치를 위한 문자 보급, 한글 운동, 언론 운동, 경제 자립을 추구한 물산장려운동 등은 사람들을 바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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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독립운동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되어 석 달 넘게 계속되었다. 이 운동은 핍박받는 세계 여러 민족에게 용기를 주었고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 아래 있던 아시아 지역의 민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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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의 상징이기도 했던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서 찍은 사진이 담긴 수형기록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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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항자우, 난징, 광자우, 류저우, 구이랑, 치장, 충칭 등으로 옮겨가며 그 형태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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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가 어린 나이의 소녀이지만 잘못되어 가고 있는 나라의 운명을 보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나를 일깨우고 있다.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열망이 모여 1945년 8월 15일 그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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