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의 옛터라는 흔적
고분이라 함은 당시 지배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무덤이지만 누가 묻혔는지 알지 못할 때 부른다. 김해시 대성동에는 3∼6세기에 해당하는 유구 와 유물이 많이 발견되어 현재 유적지로 관리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시신을 지하에 매장하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시설을 묘라고 부르는데 중국에서는 지하에 시신을 매장하고 지상에 아무런 시설을 가하지 않은 것을 묘(墓)라고 하고, 반대로 지상에 흙을 쌓아 올려서 시설을 가한 것을 분(墳)이라고 하여 묘와 분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대성동고분군이 있는 곳 주변으로 가야의 문화와 가야국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가야사 누리길을 조성해두었다. 수로왕비릉, 김해향교, 북문, 수로왕릉, 대성동고분, 봉황동 유적 등의 가야문화를 대표하는 중요문화재가 자리하고 있다.
대성동고분군은 천지가 개벽한 금관가야의 전설을 간직한 역사적인 흔적이다. 금관가야의 건국에서 등장하는 9간은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으로 당시 부족단위를 이끌던 추장의 이름이었다.
대성동고분군이라고 해서 왕릉처럼 큰 고분이 아니라 언덕처럼 보이는 곳이다. 구릉을 두르는 크고 넓은 도랑[環濠]이 발견되어 무덤과 함께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 주변에 있던 것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이곳 고분군에서는 구릉의 낮은 저지대로부터 널무덤[木棺墓]이 축조되기 시작하고 점차 구릉 위로 가까워지면서 덧널무덤[木槨墓]으로 발전하여 마침내는 대규모의 주부곽식덧널무덤[主副槨式木槨墓]이 축조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성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김해시 중심부에 있는 수장층의 무덤 떼로서 수로 왕릉비의 바로 옆에 있는 구지봉(龜旨峯)과 회현리 조개더미의 중간지점, 수로왕릉(首露王陵)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고분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바로 사회 구성원 간의 평등한 관계가 깨어져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계급들이 자신들의 우월한 정치, 경제, 혹은 종교상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일반민들과는 다른 형태로 만든 무덤이기에 왕권 국가가 자리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야지역에서는 구덩식[竪穴式] 돌방[石室]에 대형 봉토를 씌운 무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고총고분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