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보다 꽃이 좋은 날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쉽게 꺾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냥 두고 볼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반세기 전에 살았던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고생물학자였던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150억 년간 지속되어 온 우주의 진화를 생각할 수 있는 진화의 총체적인 합니다."
길을 잃어서 다행이었나. 그동안 고령을 수없이 오고 갔지만 고령 사부리와 기산리 요지로 들어가는 입구의 표시는 처음 보았다. 그렇지만 이곳부터 그 유적지로 가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후부터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부골, 사기골, 사부동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이봉강이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는데 고려와 조선시대에 도요지가 있던 곳으로 사기를 구워낸다고 하여 사기골, 사부동, 사부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자연부락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고령의 한 마을이면서 조용한 공간이다. 입구에는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한 작은 저수지가 조성이 되어 있다.
사람은 자신을 전체와 분리된 듯이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는데, 이는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위해서만 욕망과 애정으로 표현하도록 우리 삶을 제한하고 우리를 감옥에 가둔다고 한다. 우리의 임무는 그 감옥에서 해방하여 모든 생명체와 전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싸 안도록 외연을 확장해 나갈 때 의식개선이 이루어진다.
이곳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대체 도요지가 있던 곳이 어디인지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지 결정은 내려야 한다. 우선 우측으로 올라가 본다.
올라가다 보니 도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화사한 꽃을 대신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생명체와 분리된 인간 중심이고 제한된 시각은 지구 전체 생명과 조화를 무시하게 하고 결국 지구와 자연의 황폐화를 불렀다. 이 생각이 더 좁아진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다시 좌측으로 내려와서 돌아가 보니 드디어 성산 사부동도요지를 알리는 비를 만날 수 있었다.
고령 사부리와 기산리 요지는 사적 제510호로 지정이 되어 잇는데 기산리 요지는 이곳에서 수백 미터 정도 떨어진 사부리 2개소와 하나로 묶어 사적으로 지정이 되었다. 이 요지들은 14세기 말부터 15세기에 걸쳐 청자와 분청사기의 대접, 접시, 사발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굴된 그릇을 보면 고령 인수부, 고령 장흥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당시 고령지역의 질 좋은 흙과 연료, 도공의 숙련된 제작 기술을 기반으로 우수한 그릇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예전에 사용하던 가마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땅을 파면 도자기 파편이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냥 도요지로 사용되던 곳이라는 표식만 보일 뿐이다. 그릇은 무언가를 담아 먹기 위해 만들던 것이다. 하나의 찻잔에 철 따라 차를 따라나서는 것은 자연에서 삶의 본성을 찾는 방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