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한지

괴산 한지 체험 박물관

부드러운 그 숨결만큼이나 한지를 만져보면 보들보들한 느낌이 좋다. 전국에 한지로 유명한 곳이 여러 곳 있다. 안동, 원주, 문경 등 한지를 만들고 보존해오는 곳들이다. 괴산에 자리한 괴산 한지 체험 박물관에는 한지로 만든 다양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한지로 작은 소품도 만들어 볼 수 있다. 닥나무는 인류에게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원동력인 종이를 탄생시켜 인쇄문화를 이끌어온 영광스러운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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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쪽에서 괴산으로 건너오니까 한지체험 박물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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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은 사과로도 유명한 곳인데 인근 지역의 문경의 사과가 유명한 것처럼 괴산지역의 사과도 맛있기로 유명하다. 가을이 되면 괴산에서 나오는 사과가 어떤 맛일지 맛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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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와 닥나무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다. 오랜 시간 전에 이집트의 나일강변에 야생하는 ‘파피루스(papyrus)’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을 저며서 서로 이어 사용했는데 이는 오늘날 ‘페이퍼(paper)’의 어원이 되었다. 환경 적응력이 높아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닥나무의 껍질에는 ‘인피 섬유(靭皮纖維)’라고 하는 질기고 튼튼한 실 모양의 세포가 가득 들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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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을 때도 사용하던 한지는 생을 다하면 죽은 사람의 몸을 사용하는 데에도 사용이 되었다. 그리고 지전으로 저승길에 노잣돈으로 삼았다. 종이돈은 중국에서 저승길 노잣돈으로도 사용했다. 元寶 [위엔바오]는 이전 중국에서 사용하던 돈으로 나중에 그 돈을 태워서 저승길 가는 노자돈으로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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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색감의 한지로도 재 탄생하는 한지를 닥나무를 만드는 과정은 늦가을에 닥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통에 넣고 찐 후 껍질을 벗겨낸다.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 겉껍질을 제거하면 하얀 안 껍질만 남는다. 다시 솥에 넣고 나뭇재를 섞어 삶으면 이런 얇은 한지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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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지를 만드는 기술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더욱 발전한 종이가 널리 보급된 것은 삼국시대인 6~7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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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주요 정치 세력인 권문세가(權門勢家)의 금, 은, 포화(布貨)를 거둬들이고 저화로 바꿈으로써 새로운 왕조의 재정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조선시대 초기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하여 만든 종이(楮紙)로 만들어 발행한 명목 화폐를 저화(楮貨)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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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화의 발행 당시 저화 한 장의 가치는 품질이 중간 정도 등급의 베(布)인 상오승포(常五升布) 한 필 혹은 쌀 2두로 책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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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로도 활용이 되었지만 한지는 역시 공예품을 만드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기록을 남기는 수단의 종이로 만들어지는 용도로 가장 많이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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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무인 닥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재배하기를 권했으며, 조정에서는 재래종 닥나무 재배 독려를 하기도 했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옛사람들의 문화이며 오래된 우리 민족의 숨결을 간직한 흔적이 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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