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로 나아가다.

고대문물이 있는 창원 다호리 유적

국가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지배체제가 확립되고 세금을 걷는 등 국가재정이 운영되고 지방을 다스리는 구조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을 완전하게 다스리는 형태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갖추어졌다.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국가가 지방호족까지 완전하게 장악하지는 못했다. 중앙정부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형태였다. 창원 다호리라는 곳은 원삼국기(변한 또는 가야 초기)에 해당하는 토광목관묘(土壙木棺墓) 69기와 옹관묘 4기 및 가야 시기에 해당하는 대형 수혈식 석곽 봉토분 1기가 조사된 곳이다.

MG0A8536_resize.JPG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유물의 사진만큼이나 이곳의 안내도도 오래되어 보인다. 이 부근이 모두 유적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유적지가 퍼져 있다고 한다. 고대국가가 있었을 시기는 지금의 지형과 많이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북쪽으로 약 10㎞에 위치한 낙동강 제방이 쌓이기 전에는 대부분 갈대숲을 이루고 있었고 수상 교통에 매우 유리한 입지 조건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MG0A8538_resize.JPG

철기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있는데 창원의 유물들은 대가야의 유물과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보아 철기 제련기술은 가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MG0A8540_resize.JPG

습지가 형성된 곳은 물과 흙이 뒤섞여서 밀폐상태를 만들기에 유물이 잘 보존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굴된 다양한 출토유물로 인해 고대 첨단 유물의 전시장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어떤 국가가 있었을까.

MG0A8544_resize.JPG

저 앞에 보이는 유적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높이 432.1m의 구룡산 북서 줄기와 이어지는 높이 20m 정도의 야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야트막한 구릉이다. 보근을 돌아보면 유적과 인접하여서는 성지(城址)와 고분군(古墳群)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MG0A8546_resize.JPG

습지가 잘 보존된 곳이라서 이곳에서는 한국-창원 2008 람사르 협약 제10차 당사국 총회의 사전 행사로 ‘세계 습지 NGO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주제는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다. 한국 람사르 NGO 네트워크는 경남에서 열리는 람사르협약 제10차 당사국총회에 맞춰 습지 보전 정책을 개선하고 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증진시키기 위해 2008년 2월 1일 결성되었다.

MG0A8551_resize.JPG

신라, 백제, 고구려로 완전하게 삼국시대를 이루기 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위지 동이전에 변한 과 진한의 소국 안에 여러 별읍(別邑)이 있었고 그 우두머리를 거수(巨帥)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가운데 세력이 큰 사람을 신지(臣智), 그다음으로 험측(險側), 번예(樊濊), 살해(殺奚), 읍차(邑借) 등이 있었다고 한다.

MG0A8552_resize.JPG

고조선적 요소와 남부 지방의 철기시대 문화의 연속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물로 칠초세형동검, 칠초철검, 철과(鐵戈), 쇠뿔잡이항아리 등을 꼽고 있다. 칠목기(漆木器), 칠초철검, 고리자루칼[環頭刀] 등은 한식(漢式)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철기시대 초기에 한반도 남부 지방과 한(漢), 낙랑(樂浪)과의 교섭이 활발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고 한다. 다호리 유적은 습지와 인간의 생태환경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령 본점과 창원 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