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 100주년

체육의 역사를 시작하다.

올해는 필자에게도 의미가 있는 해인 모양이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의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관련된 글을 많이 썼기 때문에 탄력을 받았는데 그 해에 다른 의미 있는 행사도 있었다. 바로 스포츠의 젖줄이 시작된 해가 1919년으로 당시 일본체육협회에 의해 조선체육협회가 만들어졌던 그 해에 삼일운동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이듬해에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조선체육회가 발족되었다. 보통은 전국체전이라고 하면 우리가 주권을 회복하고 나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일제강점기에도 한민족의 영광스러운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으로 마라톤의 손기정이 있다.


지금이야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가슴에 달고 뛴다던가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이 당연스럽게 생각되지만 일제강점기에 주권이 없었던 조선인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장기를 달고 나가야 했었다. 그렇지만 조선인들로 이루어진 조선체육회는 일제의 방해에도 꾸준하게 활동을 했지만 본격적인 방해가 1933년부터 시작되었다. 제국주의를 꿈꾸며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조선인들의 체육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르는 것을 식혀야 했다.

1925년 준공 경성운동장.JPG

스포츠에 대한 내선일체도 추진하던 일본은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조선체육회를 1938년 조선체육협회로 강제 흡수하게 만든다. 조선인의 설움과 울분을 풀어주던 체육활동은 급속하게 사그라들었다.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일제는 1942년 조선체육협회마저 해산시켜버리고 조선 안에서의 모든 체육경기를 전면적으로 통제한다.

1945년 전국종합경기대회.JPG

조선인의 체육활동은 1945년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인해 다시 진행될 수 있었지만 강제로 해산된 1938년 이후로 7년간의 공백기로 다시 재건되어야 했었다. 전 세계적인 체육대회인 올림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각종 체육행사와 조선올림픽대회를 개최한다. 이는 1948년 런던에서 열리게 될 런던올림픽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하기 위한 시작점이었다. 올해가 100주년 전국체전으로 광복 이후의 제2차 조선 올림픽이 제27회 전국체전, 제3차 조선 올림픽이 제28회 전국체전으로 기산 해볼 수 있다. 그러던 중에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아직 KOREA가 정부 수립을 하지 않았지만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

- NOC 위원장이자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부위원장


광복 이후에 우리나라는 정부가 수립되지 않고 미 군정 치하여서 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다시 부활한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국가로 인정받는 중요한 국가적 행사였다. 돈이 부족했던 대한민국 선수단은 서울을 출발한 이후 18일 만에 도착한 후 태극기를 들고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서게 된다.

1948년 런던올림픽.JPG

런던 올림픽이 열리고 난 다음날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된다. 그 해에 열리는 전국 체육대회는 정부를 수립한 경축대회로 열리게 된다. 이전까지 사용하였던 조선이라는 명칭은 모든 대회에서 사라진다. 정부 수립 경축대회 겸 제29회 전국체전은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는데 이때 대회 결과는 서울이 1위, 경기가 2위, 전남이 3위였다.


1919년을 기점으로 대한체육회 창립 30주년은 1949년으로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제30회 전국 체육대회가 열리게 된다.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던 체육활동이 지방 등으로 확대되면서 지방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터진 해인 1950년 4월 19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54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함기용이 1위를 차지하였는데 이때 1위~3위가 모두 한국 선수였다. 그렇지만 불과 2개월 후인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그해에 열려야 할 31회 전국 체육대회는 중단이 되었다.


부산까지 밀려간 한국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1952년에 열리는 헬싱키 올릭핌에 선수단을 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1951년 제32회 전국 체육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전쟁의 화마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전 세계 IOC 회원국과 체육인들인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고 정부 수립을 하였으며 1919년을 기준하여 창립 30년 전국 체육대회를 열었다. 한국전쟁의 화마 속에서도 전국 체육대회를 열며 대한민국과 국민의 역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2019년 전국체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제100회 전국 체육대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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