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정재수 기념관
자식은 자신의 의지대로 태어나지 않는다. 부모 역시 유전자를 전해주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식이 부모에 행하는 것을 효의 도이고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것은 사랑의 도이다. 상주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초등학교는 현재 폐교이지만 그곳은 정재수 군이 공부하던 곳으로 정재수 기념관이 만들어져 있다. 1974년 10살의 나이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구하려고 하다가 숨진 정재수 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이곳은 정재수 군이 공부했던 당시 사산초등학교라고 불리던 곳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리고자 했지만 무척이나 추운 날 부자는 서로를 꼭 껴안은채 동사를 하게 된다. 1974년 1월 22일 아버지 정태희 씨와 함께 경상북도 상주군(현 상주시) 화서면 소곡리의 집에서 약 12km 떨어진 충청남도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에 있는 큰집으로 설을 지내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정재수기념관 앞에는 효를 기리는 시가 새겨져 있다.
- 갸륵한 꽃송이 -
험한 산 깊은 눈 속에
향기롭게 핀 한송이 곷
그윽한 향기
온 누리에 풍긴다
길이 빛난다
어린 나이로
아버지를 위하여
뜨거운 효성의
불을 피워서 불살라버린
갸륵한 꽃송이
지역의 중심이었던 고장 상주에는 효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974년 정재수 부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으며,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정재수 군이 목숨을 잃은 고갯길인 마루 목재에 묘가 만들어졌고, 1974년 묘 옆으로 정재수 효행비가 세워지게 된다.
기념관은 2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1층 ‘효자 정재수실’에는 정재수군의 효행 관련 자료가 주로 전시되어 있고, 2층 ‘효행 전시실’에는 효사상을 일깨울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효행과 관련된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974년에 10살이었으면 정재수가 태어난 것은 1964년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바로 통행금지 해제였다. 1964년에는 제주도와 울릉도가 해제되었고 1965년에는 충청북도가 해제되었으나 1966년에는 경주시(구 월성군 제외), 온양시(구 아산군 제외), 해운대구, 경기-충남 지역을 제외한 전 도서지역이 해제되게 된다.
효자 기념관에서 만난 정재수의 행적을 보면 마음이 따뜻했던 아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상주는 경상도의 중심지였던 공간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중에서 효와 관련된 이야기는 류 효자각에 얽힌 사연, 청상리의 효자 유유발, 앉은뱅이 어머니의 병을 고친 효자, 효성이 지극한 김회복 이야기, 박선각을 기리는 효자각, 닭뼈와 교훈과 효자, 호랑이도 감동한 며느리의 효성, 산신령이 감동한 며느리의 효성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내려오고 있다.
이 교실이 바로 정재수 군이 공부하던 교실이었다고 한다. 효는 늙을 노자의 생략체와 아들자가 결합되어 자식이 노인이 노인을 도와서 더 받든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효경을 필수과목으로 삼았고 고려시대에도 효경이 중시되었다.
오래전에 사용하던 교실에서는 옛날의 분위기가 묻어 나온다.
이곳은 "효" 사상을 재정립함과 아울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살아있는 효의 산 교육장으로 술기운이 있었던 아버지가 눈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아이가 옷을 덮어 주고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다가 지쳐 잠들어 결국 동사하였던 아이의 가여운 마음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