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민속

진천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일대에서 농사를 하면서 전래되어 온 농요인 진천 용몽리 농요(鎭川龍夢里農謠)가 들려올 것 같은 곳으로 진천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이 있다. 진천의 모든 것을 담기에는 공간이나 자료가 조금은 부족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진천의 향토민속을 살펴보기에는 부족함은 없는 곳이다. 진천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은 읍에서도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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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의 향토민속을 살펴볼 수 있는 진천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은 1996년 5월 설립되었으며 총면적 37,235㎡, 건물 면적 378.5㎡ 규모의 2층 건물로 되어 있다. 찾아가려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323을 입력하고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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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가면 진천군 문화유적 분포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기를 해두었다. 특이한 것은 진천군이라는 지역은 많은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수지, 만노, 금물노, 만노군, 흑양군, 강주, 진주현, 창의현, 의령군, 진주현, 진천현, 진천군은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진천군 지역을 이르는 지명으로 사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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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을 대표하는 인물은 김유신이 대표적이다. 김유신을 모신 길상사는 진천군의 여행지로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삼국시대를 지나면 고려시대의 무인이면서 무신정권을 이어나가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게 했던 임연이 있다. 임연은 대몽항쟁을 주도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독립운동가인 이상설과 신팔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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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이라는 지역의 지리적인 특징은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 지역을 지배한 적이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토기가 모두 발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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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와 삼국시대에 진천지역은 서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였다. 그중 삼룡리에서는 총 11기의 가마터가 발굴되었는데 이는 원삼국시대에 두드림 무늬토기가 백제토기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받아 관리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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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의 향토민속자료는 다른 지역의 농경문화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래 전의 역사적인 흔적도 만날 수 있지만 주로 생활과 관련된 민속자료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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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에서 보는 우리의 의복문화 역시 삼이나 목화와 같은 식물성 재료로 길쌈한 베나 무명을 볼 수 있으며 동물성인 누에고치로 짠 명주나 비단도 옷감으로 활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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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다른 지역의 민속자료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생활도구와 크게 차이는 나지 않는다. 특히 우리의 식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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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으로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진천군을 대표하는 여행지인 농다리 등에 비해 알려진 것이 적지만 향토민속이라는 것은 우리의 과거 삶이고 미래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는 의미가 있다. 진천군의 향토 민속을 살펴보면 금강 유역의 한 줄기인 미호천 유역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내륙지방으로 해안지방과 다르면서 경기도와 가까운 생활행태를 엿볼 수 있다.


"산천초목은 녹색이요 구시월 단풍은 붉은 꽃 푸른 잎이 청산 속에 화춘이라 청춘에 늙은 몸이 단풍조차 잊을쏘냐 금수강산에 곱게곱게 수놓았네 구시월 단풍은 산천초목 물들이고 대한민국 넓은 땅에 황금들판 되어 있네 - 연년이 오는 세월 농부님네 힘든 농사 대풍작을 이뤄주소" - 진천 용몽리 농요(鎭川龍夢里農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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