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藍浦)

서해의 중심지였던 곳

충청남도에서 행정의 중심지로 대표적인 곳은 공주다. 조선시대 전국의 팔도는 부, 목, 군, 현의 행정체계를 가지고 관리가 되었다. 부를 관리하는 관료는 수령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 부윤(府尹)으로서 관찰사와 동격이며, 관찰사 소재지의 부윤은 대개 관찰사가 겸하기도 하였다. 그 부의 바로 밑에 있는 것이 목으로 군읍(郡邑)의 이름이 주(州)로 된 곳 약 20개 처의 구획명을 목이라고 하였으며 그 장관을 사(使)라고 하였다. 주를 관리하는 관리를 목사라고 하였으며 그 밑에 군과 현이 있었다. 사실 지역의 중심지는 군아니면 현이었다. 현을 관리하는 현감은 우리가 흔히 아는 사또다.

MG0A5164_resize.JPG

지금 보령의 중심은 보령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보령시다. 보령은 대천군, 보령군, 남포군 등이었으며 남포는 조선시대에는 1397년(태조 6) 병마사 겸 판현사를 두었다가 1466년(세조 12) 현을 설치하였다. 군이 된 것은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홍주부 남포군, 1896년에 충청남도 남포군이 되었다. 약 18년 뒤인 1914년 군·면 폐합 때 각 지역을 보령군에 편입하고 남포군은 폐지했다.

MG0A5170_resize.JPG

서해안을 방어하던 곳에 만들어놓은 읍성으로 남포읍성과 서산시의 해미읍성이 있다. 지금 남포읍성은 예전에 사용하던 관아 건물과 남포 향교 등이 남아 있다. 향교(鄕校)의 지도를 위해 부·목에는 무록관(無祿官)인 교수(敎授), 군·현에는 무록관인 훈도(訓導)가 있었다.

MG0A5171_resize.JPG

조선왕조의 지방관은 외관(外官)이라 하여 그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도(道)의 관찰사였고, 그 밑에 수령(守令)인 부윤(府尹)·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목사(牧使)·도호부사(都護府使)·군수(郡守)·현령(縣令)·현감(縣監) 등이 있었다. 이 관아문 진서루는 옛 남포현의 출입문으로 낮은 기단 위에 건축한 서향의 2층 문루(門樓)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서 둥근기둥을 세우고 아래층은 삼문(三門)을 달았다.

MG0A5173_resize.JPG

역사 속에서 남포 현감을 지냈던 사람을 찾아보면 인조반정(仁祖反正) 후에 남포 현감(藍浦縣監)을 지냈던 우참찬(右參贊) 중돈(仲暾)의 현손(玄孫) 손종로(宗老)가 있다. 그는 해군(光海君) 때 무과(武科)에 급제했으나 인목대비(仁穆大妃 : 선조의 계비 영창대군의 어머니)가 서궁(西宮)에 유폐되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었다. 내삼문은 동헌의 출입문으로, 정면 7칸, 측면 1칸 크기의 솟을대문이다.

MG0A5178_resize.JPG

남포읍성 안쪽에는 옛날에 사용했던 남포관아문과 외동헌이 남아 있다. 이 건물들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로서 남포읍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MG0A5183_resize.JPG

남포 현감을 지냈던 종로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허 완(許 完)의 막하(幕下)로 들어가 이천(利川)의 쌍령(雙嶺) 싸움에서 적과 대전하다가 순절하였다.

MG0A5188_resize.JPG

초익공식의 팔작지붕 건물로 창방 위의 주간에는 소로[小累]를 배치한 이 건물은 정면 중앙에 2칸 툇간(退間)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다.

MG0A5195_resize.JPG

남포읍성과 외동헌 등을 둘러보고 안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남포 향교가 나온다. 조선 태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는 남포 향교는 여러 번 중건되었는데 1530년(중종 25)에 중수하고 1635년(인조 13)에 중창하였으며, 1720년(숙종 46) 웅천면 대창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는데 지금 보수 중이다.

MG0A5201_resize.JPG

오래전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는 같은 이름으로 불렸지만 충청도는 양광도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각각 양주목, 광주목, 충주목, 청주목, 공주목으로 관리되었고 남포면이 있는 곳은 공주목의 관할이었다.

MG0A5206_resize.JPG

향교와 관아는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과 사람의 다스리는 일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정 3품 목사는 제3급 지방관으로 구읍의 이름이 주로 된 약 20곳의 행정구역을 관장하였으며 제4급 지방관인 종 3품 도호부사는 전국에 약 80개, 종 4품 군수는 제5급 지방관으로서 전국에 약 80개 처, 대현의 종 5품 현령이 약 40개, 소현의 종 6품의 현감이 약 140개 처였다.

MG0A5207_resize.JPG

예종대 이후에는 현령 아래 감무라는 지방관이 설치되어 현령이 파견되지 않는 곳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남포 현감을 지냈다. 박광석이 남포 현감으로 있을 때 선세(船稅)가 과중하여 백성들이 곤경에 빠져 있음을 알고 조정에 건의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하였다.

MG0A5210_resize.JPG

윤리를 밝힌다는 의미의 명륜당에 오면 많은 생각이 든다. 풀이 무성 해지는 계절이 왔다. 하루하루가 다른 계절이다. 풀이 무성해진다는 것은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향교에서는 배움을 청하는 곳이다. 인자함을 추구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우둔해지며 아는 것을 추구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아는 체하며 솔직하다고 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교우관계가 좁아져 쓸쓸해진다. 모든 것이 풀이 무성 해지며 소질이 늘지 않는 것이다.


"비속한 마음에 용납되는 거짓 점짓은 덕의 적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천 민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