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손가락

세종대에 세워진 영천의 영천향교

사람 손에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려 있는 것은 인간이 데본기에 번성했던 지골이 다섯 개인 어류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지느러미에 뼈가 다섯 개 있는 어류가 바로 우리의 조상이다. 신체의 형태나 사랑과 증오의 감정, 열망, 사람마다의 성격이나 성향, 무언가를 보고 인식하고 분석하는 과정의 근본까지 진화의 오랜 과정에서 겪었던 사소한 사건들이 누적되면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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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스템은 인간사회를 윤택하게 만들어주었다. 생물학적인 진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을 때 인간은 자연에서 배우는 것을 넘어서 그 지식을 후대에 전해주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세대는 짧지만 그 세대가 이어지고 누적되면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었고 비교적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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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에 있는 영천향교는 1435년(세종 17)에 대성전을 건립하고, 1513년(중종 8)에 군수 김흠조(金欽祖)가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사인(士人) 이현남(李顯男)이 대성전에 봉안되어 있던 5성의 위패를 자양면 기룡산(騎龍山)의 성혈암(聖穴巖)으로 옮겨 난을 피하였다가 환안(還安:다시 제자리에 모시는 것)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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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향교는 다른 향교와 들어가는 입구가 조금 다르게 되어 있다. 외삼문이 보이는데 양쪽으로 관리하는 건물과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영천향교에서 바로 앞에 흐르는 금호강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앞에 건물이 없었을 때는 조망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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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자리한 향교를 가보면 문이 닫혀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아서 안을 돌아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향교는 보존의 가치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전의 교육환경을 접하고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래된 향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성을 길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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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있는 향교 중에서 지방을 다스렸던 군수가 가장 많이 손을 댄 향교 중 영천향교만 한 곳이 있을까. 군수 김흠조(金欽祖)가 중수, 군수 황효의(黃孝儀)가 중건, 군수 이중량(李仲樑)이 창건, 군수 조명운(曺明鄖)이 중건, 군수 심진(沈鎭)이 다시 수축, 군수 한명원(韓明遠)이 전사청(典祀聽)을 신축, 군수 남필우(南泌佑)가 보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중수, 중건, 신축이 끊임없이 이루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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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려고 들어가자 안쪽에 있던 관리동에서 한 분이 나와서 계속 따라오시며 이런저런 말을 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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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의 옛 성현들을 모셨지만 오늘날에는 서양의 인물도 같이 연구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데모크리토스는 흔히 보는 이성의 눈만 가지고도 무한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사소한 것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우정을 소중하게 여겼고 즐거움을 인생의 목표로 살았으며 철학적 고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데모크리토스는 부당하지 않은 사회의 부유한 삶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가난한 삶을 택하겠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원자(atom)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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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에서 만났던 김집과 김장생, 안동에서 만난 퇴계 이황, 이곳 영천의 포은 정몽주의 초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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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일정한 방식과 일정한 흐름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나며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서양에 비해 동양은 과학이 비교적 늦게 발달했다.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다 보면 새로운 깨달음의 주인공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끊임없이 배우고자 했던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인류의 문명과 인간 정신 발달에 진정한 기여를 한 개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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