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서부동 송곡 고택
안동 서부동 송곡 고택이 자리한 곳은 마을단위 관광자원화가 되고 있는 곳으로 벽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다. 안동 서부동 송곡 고택은 도산면 지역에 세거 하는 평산 신 씨 송곡파의 종택도 있지만 구석구석에 벽화로 카페로 머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알려나가고 있다.
안동 이 지역의 옛날 모습과 그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다. 벽화마을은 아니지만 벽화마을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안동, 한국, 나아가서 지구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우리에게 마음의 고요를 허락하는 곳이기도 하다.
책을 만들고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언제부터 가능했을까. 한 사람이 열심히 무언가를 필사한 것을 복사하고 다른 남자는 한 권의 책을 내밀고 있었다. 옆에 걸려서 나부끼는 태극기만이 당시의 분위기를 추측하도록 하고 있다.
다양한 색감의 사람의 모습들이 골목을 돌 때마다 나타난다. 안동에 예끼 잘 왔다고 말하는 예끼 마을이다. 안동에는 유독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이곳에서도 많은 선비들이 나왔을 것이다.
위쪽으로 걸어서 올라가면 산자락의 완경사지에 남서향으로 정침이 앉아 있고, 그 오른쪽에는 행랑채가, 뒤편 왼쪽 높은 곳에는 별당이 배치되어 있는 서부동 송곡 고택이 나온다. 행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一’ 자형 초가로, 마구간과 헛간 등이 배열되어 있으며 정침의 구조 양식은 자연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운 간략한 민도리 형식의 홑처마 집이다.
안쪽에 들어가면 만나볼 수 있는 송곡 고택은 1973년 8월 31일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건물 내부와 외부에 약간 개조한 흔적은 있으나 관리가 잘 되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송곡 고택의 주인인 평산심씨는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잡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다. 평산신씨의 파계는 시조의 14대 손에서 19개 파로 갈리는데 그중 문희공파(文僖公派)·정언 공파(正言公派)·사간 공파(思簡公派)가 유명하다. 조선 후기까지 상신 8명, 대제학 2명, 공신 11명, 문과 급제자 186명을 배출하였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새를 상징하고 신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형물 등을 볼 수 있다. 그 어느 곳에서 피어난 문명이든 각각 인류 문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고 각 문명마다 그들 나름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배출해냈다.
이곳은 안동의 다른 색깔을 가진 여행지로 변신을 시작하고 있다. 이곳에서 안동의 도산서원까지 이어지는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끼라고 부르는 이 마을에는 중앙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중심으로 갤러리와 포차, 작가 화실, 도자공방, 장부당 카페, 근민당이라는 갤러리 등도 있다.
서부동 송곡고택이 있는 이 마을은 1974년 안동댐을 만들기 전까지 안동에서 상권이 가장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댐이 들어서 지금 자리로 옮김에 따라 도로 건설 등으로 상권이 줄어들고 마을 기능도 점차 잃어갔다. 그렇지만 지금은 집집이 담은 벽화로 꾸몄고 빈집을 활용해 식당, 한옥 카페, 관광안내센터로 만들어 안동호 수면 위에 만든 길이 1km, 폭 2.75m인 수상 데크에서는 댐 비경을 감상하며 물 위를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