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이현보의 농암종택
오늘 지인과 이야기하다 보니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Tea Time이 있었다. 사람들은 좋은 것만을 하려고 하지만 모든 것은 균형이 필요하다. 안 좋은 것이 있기에 좋은 것이 더 두드려져 보이는 것이고 안 좋은 것을 알기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한옥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처마다. 현대의 집이나 아파트들은 빛이 안으로 바로 들어오는 구조다. 그래서 커튼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한옥은 처마를 이용해 빛을 살리면서도 그림자까지 살려내는 지혜가 담긴 집이다.
안동에는 가볼만한 고택들이 정말 많다. 다른 지역보다 도시화가 덜 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유학을 가르치고 배움이 이어졌던 곳이어서 그러한 듯하다. 한옥의 처마 길이는 태양 각도와 맞추어서 계절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를 결정해준다.
연산군이 사간원을 상당히 싫어했던 것은 사실이다. 원래 사간원이라는 곳이 왕이 싫어할만한 글을 올리는 곳이 아니었던가. 경국대전에 명시된 사간원의 직무는 첫 번째로 간쟁, 두 번째가 논박이었다. 첫 번째는 왕에 대한 언론으로서, 왕의 언행이나 시정에 잘못이 있을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한 언론이고, 두 번째는 일반 정치에 대한 언론으로 논박의 대상은 그릇된 정치일 수도 있고 부당, 부적한 인사일 수도 있다.
고택의 미학이 잘살아 있는 이 종택은 바로 1504년(연산군 10년)에 사간원 정언으로 연산군에게 옳은 말을 했다가 안동으로 유배된 이현보의 종택이다. 원래 농암종택은 분천마을에 있었지만 안동댐 건설로 수몰이 되면서 농암종택의 건물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있다가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 씨가 한 곳으로 옮겨 놓아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과 벗 삼아 예술에 취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 선비의 절제 덕목에 흠이 되지 않듯이 이렇게 여유를 누리는 사치도 허락된 듯하다.
안동의 농암종택은 봄꽃이 아름답게 피어있기도 하지만 그 균형과 절제미가 좋다. 특히 고택의 벽들에는 한옥의 벽을 흰 회칠만 하고 끝냈는데 조금 심심하다고 해서 자국이 남는 장식은 가하지 않았다. 머물지 않는 무형의 장식을 넣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다.
꽃이 가득 채우고 있는 나무보다는 무언가 비어 있는 듯한 이런 모습이 더 어울려 보인다.
연산군은 자신에게 듣기 싫은 소리만 하면 바로 압송-장형杖刑-하옥下獄-처형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사초가 문제가 되어 발발한 무오사화 4년 뒤의 일이었고, 갑자사화 당년이었는데 연산군의 실수(?)로 농암선생은 살았으며 1506년 중종반정으로 복직되고, 다음 해는 사헌부 지평으로 승진 발탁되었다.
농암종택은 낙동강 상류 청량산 자락,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가송리는 佳松-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하와 강을 배경으로 한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신비의 명산 청량산과 더불어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낙동강 700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직접 와서 보면 강과 단애, 그리고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이 매우 조화롭게 어울린 것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정치인이나 관료들을 보면 중앙으로 진출하려고 어떻게든 노력한다. 농암은 조정에 벼슬을 받았지만 자청해서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고을살이를 했다. 자신이 벼슬을 하기에 경상도 관찰사 시절 친구, 친지의 공관 출입금지는 물론이고 어떠한 청탁도 받지 않았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백성에게 관대했으며, 사적인 일이 공적인 일에 절대 개입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농암은 전 생애에 걸쳐 명예를 포기하여 더 큰 명예를 얻은 삶을 몸소 보여주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주며 살았다고 한다.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고, 이곳 분강서원에 재향 되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던가. 농암이 남긴 것 중 작품으로 전해오는 ‘어부가’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 ‘농암가’ ‘생일가’ 등 시조 8수가 남아 있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강각에서 강변으로 내려오면 퇴계오솔길(예던길)이 이어진다. 지위의 높고 낮음은 하는 일의 책임감의 크기에 따른 것이지 그것으로 사람이 차별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