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화목과 우애를 다진 체화정
가난하지만 함께 살며 서로를 배려했던 옛날과 달리 물질적인 것이 더 중요시되는 요즈음은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감이라던가 형제간, 자매간의 사이가 예전처럼 같이 않은 사건이 적지 않다. 프랑스혁명의 3대 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라 자유, 평등, 우애다. 큰 의미에서 우애는 단순히 형제간의 관계의 좋음에서 나아가 공동체의 형성과 운영의 기초를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우애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과거 조선시대가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안동의 한 도로변에서 의외의 풍광을 보았기에 차를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인공섬을 만들어놓고 정자를 지어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곳은 예안 이 씨 진사(進士) 만포(晩圃) 민적(敏迪) (1702~1763)이 영조 37년(1761) 때에 처음 지어 학문(學問)을 닦고 그 후에 조카인 용눌재(訥齋) 한오(漢伍)가 노부모(老父母)를 극진히 모시고 효성을 다하던 곳이라고 한다. 체화정이라는 이름의 체화는 형제의 화목과 우애를 뜻하는 말이다.
내려가서 정원을 거닐면서 돌아본다. 정자의 앞에는 3개의 인공섬이 있는 연못이 있는데 정자 앞에는 방장(方丈), 봉래(蓬萊),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인공섬을 둔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만포공(晩圃公)은 맏형인 옥봉(玉峰) 민정(敏政)과 함께 이곳에 기거하며 형제의 우애(友愛)를 돈독히 한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우애를 광의의 의미로 보면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고, 항상 자신이 원하는 선사(善事)를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프랑스혁명 때 사용한 표어와 논어에서 나온 내용과 유사한 것은 그냥 우연일까. 자유와 평등이 일반적인 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반면 우애는 사람들 각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의무이며 윤리적인 슬로건으로 사회 공동체가 어디에 그 기반을 두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이 정자는 총 6칸 크기의 규모로 아담하다. 정자 뒤쪽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 수목이 울창하여 경관과 지세가 좋은 것을 볼 수 있다.
어칸은 온돌방이고 좌·우협 칸은 마루방인데, 온돌방과 마루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내어 밀고 계자 난간(鷄子欄干)을 사면으로 돌린 것이 특징이다. 마루방 앞쪽으로는 4 분합 들문을 달아 전체를 개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기단은 자연석 주초를 놓았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된 체화정은 별서 건축물이라고 한다. 자연과 대비를 이루는 건축은 자연 속에 인공적인 건축물을 배치하는 것과 건축물에 인공의 자연을 도입하는 것으로 나뉘는데 체화정과 같이 한국 전통의 별서건축은 자연 속에 들어간 건축물의 대표적 사례다. 안동에 자리한 정원과 그 안쪽에 자리한 체화정에 앉아서 사회 공동체의 기본이 되어야 할 우애에 대해 곱씹어 본다.
체화정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풍산태사로 11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