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구 제월당 및 옥오재
한 번 만든 집은 재료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보수와 관리가 필요하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대규모 재건축이 수십 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의 목조건축물은 수 없이 보수하며 수백 년 혹은 천년을 넘게 그 역사를 이어온다. 목조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기초를 다진 후 기단을 꾸며 초석을 배열하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다. 기둥과 초석은 잘 맞도록 그레질을 하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서 만든다.
대덕구에 자리한 고택의 주인은 은진 송 씨의 후손들이 많이 있다. 계족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제월당 및 옥오재도 은진 송 씨인 송규렴과 송규렴의 아들이 지은 건물이며 별당이 있다. 각각 제월은 송촌동에 자리한 쌍청의 의미에서 따온 말로 조상의 맑은 기품을 닮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옥오는 깨어지더라도 나는 옥을 택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지금 제월당과 옥오재는 건물을 보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목조건축에는 이러한 포작이 없는 납도리집과 주심포 집, 다포집, 그리고 간단한 주심포계의 집과 비슷한 익고(翼工) 집이 있다.
송촌동의 고택과 달리 이곳은 자주 오픈되는 곳이 아니라서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볼 수 있었다. 현재 제월당 및 옥오재 보수정비공사 중으로 연목이 상 해체 후 부식재 교체 및 지붕번와 보수, 기단 해체 후 자연석 기단 설치, 우측면 보수가 진행되며 공사는 오는 9월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발주는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이며 시공은 한국문화재 기술원에서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수리는 한식목공과 한식와공의 전수자가 진행하고 있다.
익공집은 주두에서 쇠서[牛舌]를 밖으로 내밀고 안으로는 양봉(樑奉)으로 들보 밑을 받치는 기둥을 가지게 되는데, 쇠서를 하나만 밖으로 뻗게 한 일익 공(一翼工)과 두 개를 뻗게 한 이익공(二翼工)이 있는데 이런 형식은 우리나라의 전통 목조건축 형식 중 주류를 이루게 된다.
목조건축의 형태는 다 유사해 보이지만 그 차이가 있다. 지붕형태에 따라 맞배집·우진각 집·팔작집·모임 집으로 불리는데, 맞배집은 지붕마루 양옆으로 지붕이 경사져 내려 처마를 형성하며, 건물 측면에 박공벽(朴工壁)이 있는 간단한 지붕을 가진 집을 말하며, 우진각 집은 지붕마루 양끝을 꼭짓점으로 지붕의 네 귀에는 추녀마루를 두고 모임지붕 형식을 한 지붕이 특징이다.
지금 안쪽에 있는 건물은 한참 수리 중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펴본다.
이 집을 지은 송규렴은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송준길 등과 동종(同宗)·동향(同鄕)으로 함께 삼송(三宋)으로 일컬지던 사람이다. 1674년에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장 씨(張氏)의 복상 문제에 대해 남인의 주장인 기년설(朞年說)이 채택되고 대공설(大功說)을 주장했던 송시열(宋時烈)·송준길 등이 귀양가게 되자 이들의 신원(伸寃)을 주장했다가 파면당하였다.
필자 역시 살고 있는 집 외에 작은 연못이 있는 고택 한 채를 가지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글도 쓸 수 있는 작은 정자 같은 고택 하나가 있으면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송규렴의 아들 송상기 역시 송시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689년 부교리로 복직되었으나 이 해에 기사환국이 일어나 송시열·김수항(金壽恒) 등이 사형당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당시에는 커다란 역사적인 사건에 여러 번 휘말렸던 송상기는 경종이 병이 있으므로 세제에게 청정(聽政)을 시키자고 여러 대신들과 더불어 상소하였다. 이 일로 1722년 신임사화를 입어 강진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배소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기둥 위에 짜이는 공포나 귀포는 건물의 격식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크고 작은 부재들을 복잡하게 짜서 처마 밑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다포식이나 새 날개처럼 생긴 익공식을 사용했는데 공포의 경우 100여 년의 시간만 지나면 세부 형태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건물이 지어진 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한다.
제월당 및 옥오재
대전 대덕구 계족로 750
유형문화재 제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