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강경 옥녀봉
이곳을 올라가야 할지 그냥 집으로 가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무기력증에 빠졌었다. 정말 덥기는 더운 듯하다. 낮에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꺼려 질정도이다. 논산 강경의 옥녀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올라가 보기로 한다. 잠시 차는 밑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걸어서 위쪽으로 올라온다. 이날의 온도는 마치 5월에 동남아를 갔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받게 해 주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물이 바로 옆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논산의 강경을 흘러가는 강물은 금강수계의 물이다. 강경은 바닷물이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둑이 만들어지고 강물이 조금 더 오래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 걸어서 올라오면 강경 침례교 최초 에배지가 복원이 되어 있다. 복원된 것이 2013년이다. 당시 초가 가옥 모습과는 다르게 슬레이트 지붕에 덧 달아낸 모습이었던 최초 예배지 강경 침례교회는 충남도 문화재위원의 자문,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침례교회 관계자의 고증과 회의를 거쳐 현재 모습이 되었다.
강경은 1896년 한반도에 상륙한 침례교 최초 예배지라는 역사적 사실에 더해 한국 최초 신부에 의한 미사 집전지라는 사실이 공식화 되면서 신·구교 모두의 성지라는 색다른 이력을 갖게 됐다. 김대건 신부가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은 강경 성지성당으로 그곳은 지난 2015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50호로 지정됐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오면 옥녀봉이면서 봉화대 역할을 했던 시설물이 나온다. 이곳이 정상이다. 높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더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다. 이곳에는 강경 항일만세운동 기념비도 있는데 1919년 3월 10일 강경읍 장날을 이용하여 약 500여 명의 군중들이 이곳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아마 이 지역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충청남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논산 강경의 옥녀봉이 가장 먼저 생각나겠지만 가평, 강경, 거제, 여주, 완주, 동두천, 통영, 영주, 평택, 대전 등 적지 않은 곳의 지명이 옥녀봉이다. 그 수가 전국에 무려 207곳에 옥녀봉이라는 이름이 사용이 된다.
올라갔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걸어서 내려오면 해조문이 나온다.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으로 강경읍 금강변 옛 강경포구 옆 옥녀봉 정상 부근에 있는 천연 바위 절벽에 가로 131cm, 세로 110cm의 음각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라고 한다.
한국 최초의 수심의 높낮이를 알려주는 조석표로 시각과 높이를 모두 기록하였는데 현대적 조석표의 구성 요소를 구비한 획기적인 기념비라고도 볼 수 있다. 옥녀봉의 옛 이름은 강경산이라고 한다. 금강이 지나는 길 언덕에 위치한 강경산은 산정에 수운정이 있고 복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전투 등에서 꼭 필요한 봉수는 보통 지역에서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가 자리한 곳에서 시작이 된다. 강경의 봉수대는 직봉이 아닌 간봉으로 익산군 용안면 광두원산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과 노성산성으로 연락했고 노성 봉수대는 북쪽 공주군 월성산 봉수대로 전했다.
흐르듯 걸어보려고 했는데 날이 더워서 빨리 걸었다. 옥녀봉이 자리한 곳에는 강경산 문화공간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관(북카페, 열람실, 전시실), 체험공방이 자리하게 되는데 현재 한참 공사가 진행 중에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만들어지는 건물은 내년 초반쯤 완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논산 강경의 옥녀봉에는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