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강국만 인정한다.
국제사회에서 양심, 배려, 반성 같은 것은 철저히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 일본과 독일을 비교하는 사례나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관점이 다르게 보아야 한다. 독일은 철저하게 승전국에 의해 패배를 했고 그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독일의 게르만 민족은 쉽게 패배를 인정하는 민족은 아니다. 로마제국조차 게르만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제국의 통합지역에서 제외할 정도였다. 러일전쟁으로 일본은 자신들이 제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확신하고 뜨는 태양의 제국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전쟁을 시작했지만 철저하게 패배했다. 그렇지만 망신창이가 된 일본을 살려준 것도 미국이었다. 한참 이념전쟁이 극에 달할 때 일본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 발판을 마련했다.
러일전쟁 당시 규모만으로 볼 때 큰 규모의 함대를 보유한 러시아를 일본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국가는 없었다. 그렇지만 영국의 군사적 기술의 도움과 유대계 자본으로 일본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에게 강국으로 인정하는 대표적 국가는 미국과 영국이다. 일본 고위층의 생각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패배하고 내놓은 국가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을 강점한 것에 대해 양심, 반성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대한민국은 일본에 비해 강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합리적 혹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협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의 힘이 하나로 모아져서 강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성은 분열되기 아주 좋다. 일본이 주장하는 완전무결한 배상의 과실은 누가 가져갔을까. 대기업이다. 물론 당시 자본을 특정 기업에 몰아주어서 경쟁력을 가지게 한 것은 나름의 괜찮은 전략일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 과실은 누가 다 가져갔는가를 보면 그들만이 누렸다. 그 자본을 바탕으로 문어발식으로 서민의 돈을 흡수해버렸다.
대한민국의 국민성은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이 아니다. 균형적인 판결을 해야 할 법조인들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특정 전문직들은 돈을 벌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이 과연 일본과의 문제에 관심이 있을까. 관심이 없다. 일본 물건을 사지 않고 일본 여행을 가지 않으면 우리가 강한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물론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을 수도 있다. 일희일비하면서 확 달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가진 분열의 프레임을 해소하고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다.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하자고 포장하는 자율형 사립고는 사실 돈 없어서 선행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을 배제하고 자신들도 기득권의 세상으로 진입하자는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의 대립 프레임, 노년층과 청년층과 대립 프레임, 지역과 지역의 대립 프레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언론이 있는 이상 대한민국은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게끔 만들 정도로 강해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편의점의 음식은 아직도 형편없다. 일본의 편의점은 같은 가격대라고 하더라도 가성비가 있다. 한국의 대기업에 의해서 파생된 기업들은 숟가락을 얹어서 피를 빨아먹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누가 치르고 있을까. 서민들이다.
강자만이 자비를 베풀 수 있다. 특히 국가 간의 규약이 존재하는 국제사회에서의 과거를 반성하고 양심이 있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일부 국민들이 No 일본 여행, No 일본 제품 운동이 대신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사법 농단이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던 대법원의 판결이 과연 일본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줄 수 있을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철저하게 해부해 보는 대신 무조건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우선 정치권, 기득권, 분열의 프레임, 나만 잘살고 보자는 사회의 분위기를 모두 혁신하고 나아갈 때 미래에 승산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