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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0. 2019

벽천의 능가사

전남 고흥을 대표하는 사찰

고흥은 나로도 때문에 한 번 가본 기억이 난다. 전라남도 남단의 끝자락에 자리한 고흥군은 생각보다 거리가 있는 곳이다. 고흥 하면 유자와 김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지만 해산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고흥의 대표 여행지중 어떤 사찰 있냐고 묻자. 주저 없이 능가사를 추천했기에 능가사로 먼저 가보았다. 능가사는 90세의 나이에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다는 벽천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곳이다. 417년(눌지왕 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하였다 하나, 지리적인 위치로 보아 창건자의 신빙성은 없다고 한다.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경제력이 바탕이 되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닌 것도 고민이 되는 시대다. 직장의 종말 시대를 넘어서 직업의 종말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곳을 중창하였다는 벽천은 90세의 나이에 수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건강 걱정은 안 했을 듯하다. 

능가사가 자리한 팔영산(八影山, 608m)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병풍처럼 이어지며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으로 고흥 10 경이다. 팔영산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지가 해상 국립공원에 포함된 사례이다.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 햇빛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이 산의 봉우리가 마치 창파에 떨어진 인쇄판 같은 모습을 보여 ‘영(影)’ 자가 붙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팔영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산이다.

능가사의 문화재로는 350여 년 전에 나무로 만든 뒤 개금한 불상 8위와 나무로 만든 뒤 도분(塗粉)한 불상 22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높이 157㎝의 범종(梵鐘)과 4.5m의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귀부(龜趺) 위에 세워진 높이 5.1m의 사적비(事蹟碑)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세가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능가사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느낌이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그 기운을 모두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옛날 일본 류큐(琉球:지금의 오키나와)의 태자가 표류하다가 이곳에 이르렀는데, 이 절의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7일 만에 승려가 나타나서 태자를 끼고 파도를 넘어갔다고 한다. 이 기록은 이중환이 남겨두었다고 한다. 

산이 능가사를 품고 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너르게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사찰이다.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는 곳 사이로 걸어서 대웅전으로 나아가 본다. 

산사의 여름 오후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인적은 안 보이고 햇살만 가득한 널찍한 안마당을 마주하다 보면 노래라도 들어본다. 산중에서 어울리는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 

참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머리를 들어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을 보지 못하며, 산을 보아도 그것이 산이 아니요. 물을 보아도 그것 역시 물이 아닌 경지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수련을 해서 알지만 개인적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여럿이 하는데 여럿이  함께 수련하면 개별 수련의 게으름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대중의 힘이라고 한다. 

고요한 곳에서 몸을 쉰다고 편해지지는 않는다. 지친 마음과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마음, 긴장하는 마음이 쉬어졌을 때 비로소 고요해지는 것이다. 

90세의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65세까지 일한다고 하더라도 30년을 더 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재설정해야 되는 시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현사는 정유재란 때에 왜군에 의해 불에 타 버려 폐찰이 되었다가 1644년(인조 22)에 90세의 벽천에 의해 중창되어 능가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비는 능가사 사적비로 절의 내력을 적어두었다. 사적비에 따르면 신라 눌지왕 원년인 417년에 아도화상이 보현사라는 이름으로 절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사적비는 비신과 이수를 갖춘 완전한 형태의 비로 방형(사각형)에 가까운 자연석 좌대위에 귀부를 올렸다. 이 사적비를 보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이날의 약속이 있어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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