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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2. 2019

집성촌 (集姓村)

고령 도진리 박 씨 집성촌

같은 성씨가 모여사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집성촌은 남자 중심의 부계 마을이 대부분이다. 지역에서 하나의 성씨로 모여 살기 시작하면 집성촌을 이루게 된다. 보통 양반가 남자들의 이름이나 그 행적은 많이 전해지지만 그 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집안의 딸이었다는 정도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부분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걸 쓰고 이루었을 때 그 어머니가 조명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신사임당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는 시간이다. 지금은 박 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지만 초기에 이곳에는 주 씨들이 많이 보여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1180년(명종 10)으로 주진이라고 하였는데 진은 이곳 도진리가 나루터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고령 박씨의 집성촌인 이 마을에는 문화 유적으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8호인 고령 박씨 소윤공파 문적, 도진리 고분군, 도진리산성, 모현정(慕賢亭), 죽연정(竹淵亭), 남고정(南皐亭), 낙락당(樂樂堂), 경매정(景梅亭), 문연서원 유허비(文淵書院遺墟碑), 청룡사 등이 있다.

병조참의를 지낸 박경이 마을 앞 회천 둑을 따라 복숭아나무가 우거져 절경을 이루고, 강에는 나룻배가 다니는 나루터가 있어서 도진 또는 도원이라 부르고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 이곳으로 낙향하여 불사이군을 외치며 한철중, 김유, 권공, 박간, 박용수 등이 은거하였다고 한다. 

죽연정사로 올라가는 길목의 우측 산기슭에는 1940년 후손들이 건립한 낙락당 박택(朴澤)의 재실이 있는데, 박택는 조식(曹植)과 배신(裵紳)과 교유가 있던 선비로, 학문과 덕행이 고매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곳에도 모기가 극성이다. 풍광은 참 괜찮은 곳인데 모기가 그걸 방해하고 있다. 고령인 죽연(竹淵) 박윤(朴潤)은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탐구에 힘썼으며, 조식, 배신, 윤구, 이희안(李希顔) 등과 교유하며 음풍농월을 즐겼다고 한다. 

낙랑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여름의 잡초가 무성해서 쉽게 접근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곳을 들어가려면 낫이나 예초기가 필요해 보인다. 

이 건물은 죽연정사다. 1540년 건립된 이 죽연정은 고령에 자리한 최초의 목루각이라고 한다. 정자의 뒤편에는 대나무와 호수의 경관이자 죽과 연이라는 일련은 남명 조식선생의 죽연정 제영시가 전해진다고 한다. 

죽연정사는 원래 회천변의 목루각이었으나 현재는 정사각형의 정면 4칸, 측면 2칸 건물로, 2개의 온돌방과 전면 1칸에 연결된 골기와 팔작지붕이며 입구는 대문으로 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소인묵객(騷人墨客)은 욕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으로 보통 생각한다. 시문(詩文)이나 서화(書畵)를 일삼는 사람을 말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통칭해서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육체에 대한 아름다움에 절대적 기준은 있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더 오래간다는 것이다. 지속적일 수 있는 가능성의 아름다움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마당에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고 여름의 꽃을 피우고 있다. 배롱나무는 일명 ‘간지름나무’라고도 한다. 줄기가 매끈한 것이 관상가치는 있었지만 나무껍질이 없어 양반가의 규수가 있는 별당에는 절대로 심지 않았다는 지역도 있다. 나무껍질이 없는 것이 마치 벗은 것을 상징하는 것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렴 어떠하겠는가.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하게 세워져 있으면 삶에 흔들림이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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