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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5. 2019

보원사지 (普願寺址)

당간지주, 석조, 5층 석탑의 흔적

이 사찰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보령의 성주사지보다는 작은 규모겠지만 서산에서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서산의 대표적인 사찰도 여러 곳 있지만 보원사라는 절은 그 대지의 규모만 보더라도 상당히 큰 사찰이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놓쳤던 것들, 우리가 미처 주시하지 않았더 것들은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얼굴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 

보원사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하며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법통을 이어왔던 절의 터이다. 절에 대한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으며 현재 넓은 절터만이 남아 있는데 사적 제316호 지정이 되어 있다. 

상당히 너른 공간에 남아 있는 보물은 많지 않다.  현재 절터에는 5층 석탑(보물 제104호)·당간지주(보물 제103호)·석조(보물 제102호)·법인국사 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보물 제105호)·법인국사 보승탑 비(法印國師寶乘塔碑: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다.

신라의 인물 최치원이 보원사를 언급하였다. 그가 말한 화엄십찰은 12개 사찰로 웅주의 수사·보원사, 양주의 범어사·미리사, 강주의 해인사·보광사·옥천사, 무주의 화엄사, 전주의 국신사, 삭주의 화산사, 상주의 부석사, 한주의 청담사로 통일신라시대 9주 중 8주에 각각 배치하였다. 

화엄사찰이 모시는 비로자나불은 동향으로 배치하는데  때문에 보원사지의 금당은 정동향에 자리하고 있다. 보원사지는 화엄십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남아 있는 보물 중 하나인 석조다. 보원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애 삼존불상은 백제 위덕왕 때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시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위덕왕의  이름은 창(昌)이고, 아버지는 성왕(聖王)이다. 왕자 창은 성왕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출가하여 불도를 닦으려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철회하고 3년 상을 치른 다음 557년 공식적으로 왕위를 승계했다.

충남에는 돌로 만든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는데 대부분 폐사지에서 발견이 된다. 보원사지에도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왔다는 보원사지 오층 석탑은 비교적 그 형태가 온전하게 잘 남아 있다. 

보원사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사찰의 규모가 더 키웠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국사까지 거처하기도 했던 곳이다. 

백제의 역사에서 웅진시대를 지나 사비시대에 이르러 특히 사찰을 만드는데 많은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남하와 신라의 배신의 사이에서 적지 않은 백제의 왕이 고전하던가 전사하였다. 보원사지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고 많은 변화 속에서 지금은 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보원사지 역시 한 번도 변화를 멈춘 적이 없고 지금도 변화하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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